남양주시 이석영광장 조감도. (제공: 남양주시) ⓒ천지일보 2021.6.13
남양주시 이석영광장 조감도. (제공: 남양주시) ⓒ천지일보 2021.6.13

이석영 선생 6형제 애국심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

리맴버 1910, 복합문화공간

서대문형무소-여순감옥 재현

[천지일보 남양주=이성애 기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란 말이 있다. 독립투사들의 피와 땀, 정신을 이어받아 지난날의 아픈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다짐하는 ‘기억하다 1910 역사문화체험공간’이 있다.

191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 그날의 상처가 오늘을 다짐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 가 봤다. 역사의 산실 ‘리맴버 1910, 복합문화공간’은 서울 근교에서 1시간여 자동차로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남양주시 금곡동 경춘로에 위치해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는 지하 2층 지상 1층, 연면적 3716㎡ 규모로 지난 3월 26일 개관했다. 개관식이 열린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11주기이기도 하다. 100년 전 6형제가 한마음으로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실화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석영 기억하다 1910 현관 입구에 카페. ⓒ천지일보 2021.6.13
이석영 '기억하다 1910' 실내 전경. ⓒ천지일보 2021.6.13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앞장선 이석영 6형제

이석영 선생은 조선시대 ‘삼한갑족(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이라고 불린 명문가 경주 이씨의 후손이다. 임진왜란 때 명재상을 지낸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기도 한 그는 1910년 국권 회복을 위해 중국 유하현으로 망명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전 재산을 희사한 경주 이씨 가문의 6형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표본이 된다.

남양주시에 따르면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된 남양주 화도읍의 토지는 1910년 기준 약 40만원, 1969년 기준 약 600억원, 2020년 기준 약 2조원이 된다. 이석영 선생은 중국으로 건너갈 때 뱃삯으로 많은 돈을 건네면서 독립운동가들이 이 배를 타고 올 때 “그들은 돈이 없으니 뱃삯을 받지 말라”며 미리 돈뭉치를 줬다는 일화도 있다.

전시관 전경. ⓒ천지일보 2021.6.13
'기억하다 1910' 전시관 전경. ⓒ천지일보 2021.6.13

우당 이희영 선생은 “우리 형제는 당당한 명문 호족으로 차라리 대의가 있는 곳에서 죽을지언정 왜적 치하에서 노예가 돼 구차히 생명을 도모하지 않겠다”며 “왜적과 싸우던 백사 이항복 공의 후손된 도리라고 생각하오. 여러 형님들과 아우님들은 나의 뜻을 따라 주시오”했다.

1910년 9월 28일은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국권을 상실한 날이다. 우리 민족의 가장 치욕적인 날이라 ‘경술국치’ 라 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우당 이회영, 영석 이석영 등 6형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일가족과 만주로 망명했다. 광복군의 주축이 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항일 투쟁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면서 결정적인 시기에 국내 진공 작전을 펼치고자 했다.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독립군을 세워 전쟁 방략을 세웠다. 그러나 독립운동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금이었다. 이석영 선생의 남만주 독립운동 중 그 많던 자금도 바닥이 났다. 남만주 생활 힘들어지자 배이징으로 건너가 60대 중반 빈곤한 삶을 살았다. 이어 그의 나이 70대가 훌쩍 넘었지만 상하이로 건너가 빈민가에서 옥수수죽으로 연명, 굶주린 삶을 살다 끝내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1991년, 마침내 이석영 선생은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명희(68, 여, 서울)씨는 “저도 경주 이씨라 체험관을 둘러보면서 특별한 자부심이 생긴다”며 “우리 가문에 이렇게 훌륭한 분이 있음을 더욱 선전하며 그분들의 정신에 해를 끼치는 않는 삶을 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독서실. ⓒ천지일보 2021.6.13
컨퍼런스 룸. ⓒ천지일보 2021.6.13

◆빛을 잇는 손

미디어홀 옆에는 갤러리처럼 하얀색 공간에 작품이 보인다. 글로벌시대를 이끌어가는 한민족의 기상을 표현한 ‘빛을 잇는 손’ 조형물이 있다. 대한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희사한 이석영 형제가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손을 맞잡고 있는 조형물 위를 보면 파란 하늘도 보인다.

좌측으로 가면 독립운동 서적과 자료가 눈에 보인다.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구매해 먹으며 독서 삼매경에 빠진 여유로운 시민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컨퍼런스룸도 있어 청소년·일반 시민들이 독립운동 자료를 검색하고 이해할 수 있다. 또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영상도 가능하다.

이석영 법정 모형물. ⓒ천지일보 2021.6.13
반민족행위 처벌 특별법정 모형물. ⓒ천지일보 2021.6.13

◆역사 법정

역사 법정은 방문객이 검사와 변호사가 되어 친일파의 죄상을 이해하고 단죄할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판사석에는 이석영 선생과 이회영 선생,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중·고등학생들이 직접 검사와 변호사가 돼 을사오적 등 친일파의 죄상을 이해하고 단죄할 수 있다.

재판장은 이석영, 이희영, 이시영, 피고인 이완용, 검사 특별감사관 유관순, 판결선고일은 2021년 3월 26일로 적혀있다. 사유는 “피고인을 반민족행위처벌법 제1조, 제2조, 제4조에 의거해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탕 탕 탕”

이완용 조형물. ⓒ천지일보 2021.6.13
쇠사슬에 묶인 이완용 조형물. ⓒ천지일보 2021.6.13

◆쇠사슬에 묶인 이완용 조형물

독립투사들이 수감 되었던 ‘서대문형무소’와 여순 감옥을 재현했다. 친일파 감옥은 법정 바로 옆에 있다. 감옥 한 곳에는 쇠사슬에 묶인 채 엎드려있는 모습의 친일파 이완용의 조형물도 있다. 친일파 중 대표적인 이완용의 조형물은 후대의 역사, 후대의 사회가 응징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설치됐다. 관람객들은 곤장을 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독립계단 벽돌에는 남양주 출신 독립유공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조광한 남양주 시장은 “1910년, 나라를 지키지 못한 상처를 새로운 각오로 다짐하고 이석영 형제 애국의 가치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역사체험관을 건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남양주시는 이석영 선생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3개의 도시 발전 축 중 하나를 ‘이석영축’으로 정하고 기념사업을 이어 오고 있다.

6월은 특별히 충렬을 높이 드러내는 달이다. 가족들과 당일 코스로 다녀올 수 있는 남양주역사체험관을 추전해 본다.

이석영 광장 조형물. ⓒ천지일보 2021.6.13
이석영 광장의 미술작품. ⓒ천지일보 202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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