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호(오른쪽 뒤)님과 삼남매가 처음으로 식사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 독자 임은경씨) ⓒ천지일보 2021.3.26
임승호(오른쪽 뒤)님과 삼남매가 처음으로 식사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 독자 임은경씨) ⓒ천지일보 2021.3.26

경찰서와 과학수사대까지 동원
산행 중 시신 같아 보여 신고
잃은 줄 알았던 아버지 되찾아
3남매, 은혜에 아버지로 모셔

[천지일보 광주=김도은 기자]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사회는 더욱 각박하고 먹고 살기조차 힘들다는 애타는 소리가 여기저기 터지는 요즘 산행 중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시신을 발견, 경찰서와 과학수사대까지 동원해 삼남매에게 아버지를 되찾아 준 사연이 알려져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2020년 11월 회사원인 임승호(58)씨는 휴일 장성 불태산 산행 중 중턱에 이르러 뭔가 홀리듯 평소 가지 않았던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게 됐다. 그때 승호씨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이리저리 뒤져봤다. 옷 같은 천 속 나뭇가지를 건드려보고 집으로 돌아와 이날 잠을 설쳤다.

‘나뭇가지였을까? 혹시 사람 뼈?’ 뒤척이던 잠결에 하얀 옷 입은 사람이 보여 ‘시신이 맞구나. 누군가 애타게 찾고 있을 수 있겠다’라는 확신에 오전 경찰에 신고했다.

임씨는 이날 장성경찰서와 과학수사대를 직접 이끌고 불태산을 향했다. 확인해 보니 백골이 된 시신이 맞았다. 파헤쳐본 이 시신의 옷에는 ‘임채호’의 도장이 함께 있었다.

임채호씨가 요양원에서 나가 마지막으로 CCTV에 찍힌 모습. (제공: 독자 임은경씨) ⓒ천지일보 2021.3.26
임채호씨가 요양원에서 나가 마지막으로 CCTV에 찍힌 모습. (제공: 독자 임은경씨) ⓒ천지일보 2021.3.26

경찰은 임채호씨의 딸 임은경씨에게 전화해 “장성 불태산 중턱에서 백골시신이 발견됐는데 옷 속 소지품에 ‘임채호’라는 도장이 발견돼 전산 조회해 보니 유가족이신 것 같다”며 DNA 검사를 권했다.

한편 임은경씨 등 삼남매는 어머니(50대)를 뇌출혈로 하늘로 보내고, 치매로 아프신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셨으나 일주일만에 홀연히 사라져 가족은 1년 반 눈물 속 기다림을 반복해야 했다.

지난 24일 기자가 만난 임은경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심한 스트레스로 쓰러져 입원 치료와 각종 질병으로 1년 반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겠다”며 “저희 삼남매 생명의 은인이신 작은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만신창이가 돼 눈물뿐인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라고 눈물을 머금었다.

삼남매와 경찰은 CCTV가 끊어진 시점부터 북부경찰서 실종팀과 기동대 2대, 119 소방대원, 헬기와 드론, 수색견까지 1차 수색과 2차 수색을 거쳐 샅샅이 뒤졌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2차 수색할 때는 그렇게도 씩씩하게 아버지를 찾을 거라며 용기를 주던 남동생도 쓰러졌다. 요양원에서 아버지가 사라진 그때 신고만 했더라면...

삼남매 하루하루의 삶은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삶이었다고 했다.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보이지 않아 심한 스트레스로 병원과 입원 치료를 병행해 가며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황이었다.

하루는 새벽 무렵 어지럼증과 구토가 심해 숨을 쉴 수 없어 119에 실려 갔는데 이석증이 가장 심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고도 낫지 않아 병원과 한방병원 등을 오가며 치료했으나 병만 더 깊어 갔다.

드디어 2020년 12월 16일 DNA 일치로 아버지(76)가 맞다는 연락을 받고 삼남매는 아버지를 모시고 17~19일 삼일장을 치르기로 했다. 18일 오전 아버지 최초 발견자 임승호씨가 조문을 왔다. 경찰에 특별히 부탁해 조문 온 임승호씨는 한없이 우는 삼남매에게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산에서 아버님의 모습을 보니 헤매고 발버둥 치며 힘들게 돌아가신 게 아니라 하늘 보고 방에서 주무시듯 편히 가신 모습이었으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또 한 번 위로의 말로 다독이려 애썼다.

임씨의 조의금 봉투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으로 가셔서 평온하게 쉬십시오. -선생님 잠드신 곳 발견자-’라고 썼다.

작은아버지가 된 임승호씨가 삼남매을 위해 챙겨주신 여러 가지 약재와 생선. (제공: 독자 임은경씨) ⓒ천지일보 2021.3.26
작은아버지가 된 임승호씨가 삼남매을 위해 챙겨주신 여러 가지 약재와 생선. (제공: 독자 임은경씨) ⓒ천지일보 2021.3.26

한편 아버지 장례 후 삼남매에게는 대가족이 탄생하는 진기록이 필쳐졌다. 임승호씨는 장례 후 삼남매 단톡방을 만들어 “아버지께서 늦게나마 가족 품에 가시게 돼 다행입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좋은 곳에서 평온히 잠드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제가 한 일은 그동안 자녀분들과 가족 모든 분의 애타는 심정에 조금 도움이 됐을 뿐입니다”고 보냈다.

임승호씨를 작은아버지로 모시고 싶다며 제안했고 임승호씨는 “조카 셋과 그 배우자, 그 가족까지 합하면 어마어마한 새 식구가 생겼다”며 “형님(돌아가신 아버지) 덕에 대가족을 얻었으니 뿌듯하고 흐뭇한 마음뿐”이라고 답했다.

또 임승호씨는 경찰서 담당 형사에게도 “형사계 여러 직원분이 가파른 산을 오르시고 고인의 유골이 유족들에게 무사히 전해줄 수 있도록 애써주신 노고에 유족을 대신해 감사하다”며 “형사계 직원을 비롯한 경찰서 직원 여러분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한다”고 감사의 인사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경찰은 “새해 초부터 감동적인 사연을 접하게 됐다”며 “선생님의 따스한 마음 덕에 이런 좋은 인연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답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임승호씨는 삼남매를 조카라고 부른다. 공교롭게도 돌아가신 아버지 성함은 임채호, 아버지 발견하신 분은 임승호다. 그는 삼남매에게 “1년 반동안 뇌가 하루도 쉬지 못하고 고단했을 것”이라며 뇌에 좋은 천마꿀, 칡, 산삼주, 간고등어 등 밑반찬을 지금까지도 챙겨주며 가족같이 지내고 있다.

최근 자식을 등지고 아동학대와 살인까지 일삼는 모습과는 다르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임승호씨의 선행은 따뜻한 봄기운과 함께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

임승호씨가 장례식에 참석해 넣은 조의금 봉투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으로 가셔서 평온하게 쉬십시오. 선생님 잠드신 곳 발견자’라고 기록돼 있다. (제공: 독자 임은경씨) ⓒ천지일보 2021.3.26
임승호씨가 장례식에 참석해 넣은 조의금 봉투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으로 가셔서 평온하게 쉬십시오. 선생님 잠드신 곳 발견자’라고 기록돼 있다. (제공: 독자 임은경씨) ⓒ천지일보 202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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