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랍비 장례에 참석한 유대교인 일부가 지붕 위에 올라가 있다. 이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이다. (출처:AP/뉴시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랍비 장례에 참석한 유대교인 일부가 지붕 위에 올라가 있다. 이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이다. (출처:AP/뉴시스)

 

장례식에 마스크 없이 수천명

종교적 신념으로 마스크 거부

“회당 폐쇄, 종교 박해로 생각”

‘사회와 단절’하고 오직 율법만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서 수천명의 유대교 신자들이 랍비(유대교 율법 교사)의 장례식에 모여 논란이 되고 있다.

AP통신은 31일(현지시각) 예루살렘에서 코로나19로 숨진 랍비 메슐람 솔로베이치크의 장례가 거행됐다고 보도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그의 장례식엔 유대교도 수천명이 모였다.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였다. 군데군데 마스크 착용자도 눈에 띄었으나 ‘턱스크’ 등 불량한 상태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유대교도들은 도심을 통과하고 거리를 누비며 묘지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현재 이스라엘은 국가 봉쇄령을 내리고 10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는 등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강력한 방역망을 구축하고 있다. 또 지난달 30일까지 국민의 30%가 넘는 301만명이 코로나 백신을 한 차례 이상 접종하는 등 백신 접종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이 견고한 이스라엘의 코로나 방역 전선을 흐트러트리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초정통파 유대교인(하레디, Haredi)’이다. 초정통파 유대교인들은 유대교 율법(토라)만을 철저하게 따르며 종교 공부에 몰두하면서 경제활동을 물론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코로나 상황에서도 방역 수칙을 전혀 준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와 회당문을 계속 열고, 대규모 집회 형식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한 유대인 회당에서 수천명이 모여 ‘비밀 결혼식’을 진행해 크게 논란이 됐다. 무려 7000명의 유대교 신도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노래를 부르고 어깨춤을 추는 장면은 이스라엘 정부를 경악시켰다. 이들은 정부에 철저히 결혼식 사실을 숨기고 신도들끼리도 비밀을 당부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초정통 유대교인 대다수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검사를 거부하며 의료진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단속에 반발해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랍비 장례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유대교인 수천 명이 운집한 모습. (출처=AP/뉴시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랍비 장례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유대교인 수천 명이 운집한 모습. (출처=AP/뉴시스)

이스라엘의 초정통파 유대교인들이 정부의 방역에 반기를 드는 이유는 바로 이들의 종교적 신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잔나 헤셀 다트머스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유대교 회당을 폐쇄하는 것을 ‘종교박해’로 받아들이고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세속적인 권위를 부정하는 탓에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믿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초정통파 유대교인들이 코로나 방역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유대교 최고 지도자의 인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 이스라엘 언론에 따르면 초정통파 유대교 사회의 최고 랍비 하임 카니에브스키가 지난해 9월 학생들에게 코로나19 검사를 거부하라고 지시해 파장이 일었다. 그는 “학생들을 합법적인 격리시설에 보내는 것은 토라(유대교 경전) 공부를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브네이 브락, 메아 쉐아림 등 초정통파 유대인 마을에서는 아예 집단 면역 체계를 선택하고 자체적으로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있다. 이는 정부 방역에 제한받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다. 일부 전문가 사이에선 “유대교에서는 지금이 마지막 때 메시아가 곧 나타날 때라고 믿기 때문에 정부 방역 수칙보다는 더더욱 토라와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사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마스크 착용이나 집회 금지 등 코로나 방역에 저항하는 사례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다.

지난해 미국에선 공화당 소속 주 하원의원이 종교적인 신념을 이유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한다고 선언해 파장이 일기도 했다. 오하이오주 하원의원 니노 비틀리는 당시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미국은 유대교·기독교 원칙에 따라 세워진 나라라면서 “이 원칙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하느님의 형상과 모습을 따라 창조됐다.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가장 잘 보이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내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으로 예배 등 대면 종교활동이 금지됐을 때 일부 목회자들은 ‘하나님은 이럴때일수록 우리의 신앙을 보신다’며 오히려 더 열심히 모여야 한다고 설교했다. 당시 최소 20여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예수비전성결교회 담임 안희환 목사는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어려움을 겪으면 그것은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영광”이라며 “그러니 똑같은 상황(코로나19 감염)이 또 오더라도 나는 누구든지 와서 예배하라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방역 수칙을 강제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종교의 자유를 무시할 순 없다. 그러나 문제는 마스크 착용 거부 등 방역 수칙을 무시할수록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신도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4월 NYT 보도에서는 유대인 7000여명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최소 600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뉴욕 유대인(110만명) 1000명 중 5~6명 꼴로 병에 걸린 셈이다. 랍비도 여럿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다.

외삼촌과 할머니, 사촌 2명이 확진됐다는 유대인 슐림 라이퍼(34)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발병 이후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가정이 단 한 곳도 없다. 성서 속에 나오는 대규모 전염병 같다”고 말했다. 라이퍼는 “큰 외삼촌과 옆집, 맞은편에 살던 이웃이 일주일 새 모두 세상을 떠났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초정통파 유대교인들의 잇따른 방역 일탈에도 이스라엘 정부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는 커녕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에선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오는 3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유대교 관련 정당들의 반발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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