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운동 위해 목숨받친 삼부자 중 아버지인 유찬희와 두 아들 (출처: 천안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0.5.9
광복운동 위해 목숨받친 삼부자 중 아버지인 유찬희와 두 아들 (출처: 천안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0.5.9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광복을 위해 목숨 바친 아버지와 두 아들이 5월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8일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유찬희·유기석·유기문 세 부자를 올해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유찬희는 1883년 8월 8일 황해도 금천에서 태어났다.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던 그는 탄압을 피해 1913년경 중국 연길현 국자가로 망명해 한인 보호와 계몽에 힘쓰는 한편,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북간도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국민회에도 참여해 독립군을 재정적·군수적으로 지원했다. 이후 연해주를 거점으로 한인사회 안정과 민족의식 고취를 도모했다.

아버지 유찬희의 독립정신을 이어받아 장남 유기석과 차남 유기문은 중국 관내를 거점으로 의열투쟁을 전개했다. 1905년 1월 12일 황해도 금천에서 출생한 유기석은 1920년 흥사단에 입단해 원동위원부에서 활동했고, 베이징 유학 중 아나키즘을 수용하며 독립운동의 사상적 방략으로 삼았다. 그는 1930년 남화한인청년연맹을 결성하고 1932년 동생 유기문 등과 함께 결행한 ‘톈진투탄의거’, 1938년 일본군함 폭침 의거 등 본격적인 의열투쟁에 나섰다. 이후 한국광복군에 합류해 초모활동을 전개했다.

형으로부터 아나키즘을 수용한 유기문은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입하고 의열투쟁 조직인 흑색공포단 결성에 동참했다. 1932년 12월 톈진에서 형 유기석이 전달한 폭탄을 일본 기선에 투척하며 ‘톈진투탄의거’에 참여했고, 1935년 흑색공포단이 전개한 친일 변절자 처단 의거에도 가담하는 등 의열투쟁을 이어나갔으나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세 부자의 공적을 기려 2008년 유기석에게 독립장을, 2010년 유찬희에게 독립장, 유기문에게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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