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역사적으로 일본에 상당히 큰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우리는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로 단단히 화가 나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피해자이고, 일본은 가해자라는 인식이 이번 아베 정권의 새로운 대일본 제국 건설 기도와 미국을 따라가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다시 쥐어보겠다는 아베의 야망이 분명히 섞여 있다. 또한 최근 트럼프-문재인-김정은 각국의 지도자들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재팬 패싱’을 했던 것이, 아베의 자존심을 자극해 결국 한국에 “두고 보자”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아베 정부의 결정은 반일 감정에 더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갔던 반일 감정의 폭이 이번엔 많이 거세졌다. 시민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일본의 경제 보복을 규탄했고, 정부의 단호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열기를 더하고 있다. 이번에는 일본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증가하고 있다.

요즘 직장인들의 회식자리를 살펴보면, 일본에 당했던 역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역사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통해 현재와 비교나 대조를 하는 것은 보다 나은 미래로 전진하기 위함이지만, 지금은 그것과는 달리 과거의 역사를 끄집어내 현재 상황에 접해 점점 분노로 일본에 대한 생각을 표출하고 있다.

양국에서 나타나는 징후들은 예사롭지 않다. 특히 피해국인 우리나라가 그렇다. “일본에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캠페인은 휴가철을 맞아 실행에 옮기고 있을 정도다. 30대 후반의 주부 박모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여행을 가려고 봄부터 계획했지만, 남의 눈치도 보이고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일본여행을 취소하고 제주도로 휴가 여행지를 바꿨다”며 지금의 상황을 전했다.

한일 간의 갈등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감정싸움은 좀처럼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은 바로 민간인들이다. ​한일 민간교류 중단 사례가 35건에 이르며, 여행객 감소로 국내 항공사의 일본 노선이 축소되거나 중단됐고, 더 나아가 영화, 도서, 음원 등 문화계로까지 불매운동이 확산 중이다. 일부 한국 시민들은 내년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우리 선수단을 보내지 말자는 주장에 동참하고 나서고 있다.

최근 개봉한 일본 영화들은 ‘노재팬’ 기류로 흥행에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개봉 중이거나 앞으로 개봉을 앞둔 일본 영화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 속에 부모들이 선택을 꺼리고 있다. 가해자로 몰리고 있는 아베 정권 속 일본 국민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한국과 연계돼 사업을 하거나 유통, 문화교류를 하는 적지 않은 일본인들은 자칫 지도자들 간의 감정싸움으로 피해를 입을까 고심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결정한 날 닛케이 평균주가는 전날보다 2.11%나 빠졌다. 이전 같으면 한국 여행객들로 북적거리던 성수기인데도 도쿄, 오사카, 홋카이도 등 유명 관광도시들은 한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거의 끊어져 썰렁한 분위기다. 더 이상 여행 프로그램과 먹방에서 일본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반일 감정은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국내에서 활동하는 연예인, 음악, 영화, 도서, 일반 문화교류까지 차단하고 있다.

심지어는 한류 스타들이 일본 활동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주장들이다. 아베의 한국에 대한 정치 적대 성향에 문화계까지 동요될 필요는 없다. 출판계에서도 일본 서적 출간을 미루거나 작가 방한 행사를 취소했다. 문화교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들이다. 일본 지우기가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을 막고 정치, 경제와 분리된 보다 더 미래지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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