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프랑스의 극작가, 소설가인 이폴리트 장 지로두(Hippolyte Jean Giraudoux, 1882~1944)는 <축구의 명예>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손을 사용할 경우 공은 더 이상 공은 아니고 축구 선수는 더 이상 축구 선수가 아니다. 손은 속임수를 뜻한다. 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속일 줄 아는 두 동물, 인간과 원숭이뿐이다. 공은 속임수를 용인하지 않는다.”
그의 말처럼, 과연 공은 속임수를 용인하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지구촌을 달구고 있는 월드컵에서 우리는, 공이 속임수를 용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승부보다는 명예가 더 존중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선한 희망일 뿐이다.

브라질의 파비아누는 코트디부아르전에서 두 번이나 핸들링 반칙을 범하고서도 승부를 결정짓는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골 세리머니까지 마친 파비아누는 활짝 웃으며 주심과 대화를 나누었다. 두 눈 부릅뜨고 이 광경을 지켜본 네티즌들이 ‘신의 손’이라며 그를 조롱했고, 주심에게는 비난이 퍼부어졌다. 주심이 정말 못 본 것인지, 보고도 못 본 척한 것인지는 자신과 신 밖에는 모를 것이다.

‘신의 손’ 원조는 역시 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감독이다. 그는 1986년 월드컵 8강전 잉글랜드와의 경기 중 오른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왼손으로 튕겨 넣어 동점골을 터뜨렸다.

세계의 언론은 그에게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붙였고, 신의 가호 덕분인지 그는 조국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마라도나는 예선전에서 대한민국의 허정무 선수로부터 매운 ‘하이킥’ 맛을 보았고, 이후 두고두고 그것이 태권도 축구였다며 비아냥거렸다. 양심적으로 따져볼 때, ‘태권도 축구’는  ‘신의 손’에 비하면 오히려 순진하고 유쾌하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 역시 스페인 프리메리가 2006~2007시즌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신의 손’으로 득점한 전력이 있다. 마라도나와 메시는 ‘신의 손’으로 엮인 달인과 수제자인 셈이다.               

역시 ‘신의 손’으로 프랑스를 이번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은 티에리 앙리는 초라했다. 그는 작년 11월 아일랜드와의 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볼을 왼손으로 컨트롤한 뒤 윌리엄 갈라스에게 패스해 동점골을 뽑게 했고 덕분에 본선 무대에 겨우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본 무대에선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일찌감치 보따리를 쌌다. 신의 보살핌은 딱 거기까지였다.

‘신의 손’은 필드 플레이어에게는 오명이지만 골키퍼에게는 영광스런 호칭이다. 우리나라 신의 손 선수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러시아 출신으로 원래 이름이 사리체프였지만 별명으로 붙여진 ‘신의 손’을 아예 한국식 이름으로 바꿔 귀화했다.

‘신의 손’ 최고의 전설은 레프 야신(1929~1990)이다. 그 역시 러시아 대표 선수였으며 812경기에 출전해 480경기에서 한 골도 주지 않았고, 페널티킥을 150번이나 막아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1994년 월드컵부터 최고의 골키퍼에게 ‘야신상’을 주고 있다.

선수도 주심도 인간이고 그들의 능력을 넘어서면 신의 영역이다. 만약 신의 영역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신의 보살핌 안에 있는 게 틀림없다. 분명 그렇다. 보이지 않는 신의 손이, 우리들을 거두고 있는 게 틀림없다. 우리가 마음껏 행복해도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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