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원래 북한 경제발전의 기반은 일제가 남긴 잔재가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실은 지방경제가 한몫을 했다. 산이 많은 북한에서 산열매를 이용한 식료품과 지방특산물이 1960년대까지 북한 인민들의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해 줬다. 그날의 향수를 되살리기라도 하듯 김정은은 올해 연초부터 갑자기 ‘지방발전 20×10정책’을 강조하고 나섰다. 평양과 지방의 경제력 격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2021년부터 시작된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다 보니 지방경제의 낙후성이 더 심각하게 부각 됐을 수 있다. 하나 평양의 경제가 지방보다 나은 것은 별로 없다.

평양과 지방 간의 경제 및 생활 격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김정은 위원장이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지방발전 20×10정책’을 들고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3년여에 걸친 국경봉쇄와 지속되는 경제 제재, 무기 개발을 위한 편중된 자금 사용 등으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로 경제가 피폐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원래 어려운 살림살이에 북한 정권이 핵무기 개발과 ICBM 개발 등 허튼 데 낭비와 탕진으로 일관하다 보니 북한 경제가 거덜 난 것이다.

평양 정권은 ‘지방발전 20×10정책’을 ‘지방발전 20승(乘)10정책’이라고 말한다. 10년 동안 매년 20개 군(郡)에 첨단 지방산업기지를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롤모델은 북한 강원도 김화군의 지방공장이다. 김화군은 북한에서 가장 못사는 지역 중의 하나다. 기본적으로 군부대가 많기 때문에 지방산업이 들어서는 것도 어려울 뿐 아니라 지역 특산물도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지역에 북한 기준으론 첨단 공장이 가동되고 있는 것을 확인한 김정은 위원장이 이렇게 하면 된다는 표준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그 공장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병에 음료수를 넣고 마개를 닫는 것을 자동화한 공장이다.

지금 북한에서는 김화군 따라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노동당에서는 직접 재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비상설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북한 지방경제 사정이 심각하다고 자인하고 지금이라도 지방경제 발전에 힘을 쓰기 시작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화군의 지방공장 내용을 들여다보면 현실적으로 타지방으로의 확산이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크나큰 문제다. 노동당에서 시멘트나 강재를 지원해서 겉모습이 그럴듯한 공장을 만드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공장 안의 내용물은 노동당이 지원해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화군은 접경지역이다 보니 외자를 유치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지역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이전에 원산 갈마 유원지 개발을 위해 중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활동이 적극 전개된 바 있다. 그 이전에는 금강산 관광을 통해 한국의 자금이 이 지역으로 유입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자동화 공정에 대한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지방공장들은 고난의 행군기에 기계와 부속품들을 전부 뜯어내 팔아먹어 애당초 기반시설이 전무한 상태이다. 더구나 현시점에서는 북한의 지방 어느 곳도 외자를 유치할 수 없는 상태다. 북한이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인해 자본과 기술을 들여올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기대할 수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도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동화 공정을 비롯해 각종 생필품 생산을 위한 공장 설비들은 북한 내에 설비와 부품 조달을 위한 연관 산업들이 없다. 부분적으로 연관 산업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외부자원의 유입 없이는 한계가 있다. 북한은 자력갱생을 내세워 김화군과 같은 자동화 공정을 만들려고 하겠지만, 수많은 자재와 기술을 북한 내부에서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발전 20×10정책’을 위해 북한이 국경을 열고 외자 유치를 시도해도 여기에 응할 외국자본은 없을 것이다. 북한이 이를 모르고 추진했다면 정말 ‘우물 안 개구리’다. 김정은은 먼저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거기서 개혁 개방의 길을 찾아야 한다. 먼저 농촌을 살리고 거기서 경제발전의 답을 얻으라는 말이다. 개혁과 개방이 없는 북한식 경제발전은 한낮 공염불에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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