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봄은

윤석산(1947~ )

역신(疫神)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면구스럽게 돌아서는

처용마냥

우리의 봄은 그렇게 왔다.

 

민낯의 서울 광화문 광장은 오늘도

낯익은 군중들로 붐비고

 

밀가루 반죽으로 버무려진 듯

이것도 저것도 아닌 널브러진 세상.

그러나 저마다의 소리로 저마다의

함성 터뜨리는 세상

 

그래 촛불도, 태극기도

모두 아랑곳하지 않고

봄날은 그렇게 우리의 곁 훌쩍 찾아왔다.

 

[시평]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우리의 곁을 찾아왔다. 내가 중학교에 막 입학하던 1960년의 봄날에는 4.19가 일어났다. 그해 이후 우리의 봄날은 늘 데모대와 함께 최루탄으로 분비는, 그런 봄날이었다. 대학생이 된 뒤에도 봄날은 춘투(春鬪)라고 하여, 캠퍼스는 최루탄과 함성으로 혼란스러웠다.

요즈막은 다른 양상의 혼란이 우리에게 엄습했다. 서로 다른 이념을 앞세우고, 누구들은 촛불을, 누구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든다. 그래서 우리의 봄날은 역신(疫神)에게 아내를 빼앗긴 처용(處容) 마냥, 면구스러운 얼굴을 하고 우리의 곁을 찾아온다. 그래서 세상은 밀가루 반죽으로 버무려진 듯,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우리의 앞에 널브러진다.

돌아보면 나의 봄날은 중학생 이후 늘 그랬다. 4.19로, 5.16으로, 한일협정반대로, 개헌반대로, 유신반대로, 그러다가 5.18 광주항쟁으로, 군부독재타도로 늘 혼란스러운 봄날이었다. 조기방학을 아쉬워하며 젊은 날을 보내야 했다. 이제 나이가 80에 가까워져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우리 봄날의 혼돈. 언제나 아지랑이 피워나는, 그런 아련한 봄날을 맞을 것인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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