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광장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과 관련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긍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불교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22년 9월 29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강남구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린 서울국제불교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하여 삼배의 예를 올리고 있는 모습.
송현광장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과 관련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긍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불교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22년 9월 29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강남구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린 서울국제불교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하여 삼배의 예를 올리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선을 염두고 두고 보수개신교 층을 결집하려는 것이 아닌가? 투표로 선출되는 정치인인 만큼 우리도 4월 총선에서 불교계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불교계가 서울시의 말 바꾸기에 화난 모습이 역력하다. 오 시장이 지난달 23일 서울시 임시회의를 통해 종로구 송현광장(열린송현 녹지광장)에 이건희 미술관 외에 다른 시설물을 짓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기념관 건립을 시사하자, 가톨릭 성지화 문제 등으로 이미 서울시와 얼굴을 붉혔던 바 있는 불교계는 “기념관 건립을 강행하면 서울시와 관계를 단절하겠다”며 반발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13일 불교계 매체 법보신문 등에 따르면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회는 지난 5일 긴급 회의를 소집하고 태고종과 한국불교종단협의회 등 범불교계와 연대해 성명문 발표와 피켓시위, 오세훈 서울시장 면담 등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 송현광장 내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저지하기로 했다.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장 선광스님은 “종교 갈등을 유발하고 불교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이 전 대통령을 기리는 시설이 다른 곳도 아니고 조계종과 태고종 총무원 사이에 들어선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성난 불심을 전했다.

당초 오 시장은 송현광장에 이건희 미술관 외에 다른 시설물을 짓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추진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송현 광장에 이승만 기념관을 세우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때도 “시민 동의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지켰다.

[천지일보=송연숙 기자]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열린송현광장 ⓒ천지일보 2023.09.26.
열린송현광장. ⓒ천지일보 DB

하지만 오 시장은 지난달 23일 서울시의회 임시회에서 “현재 (기념관 건립 장소로) 가능성이 제일 높게 논의되는 데가 송현동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지금 영화 건국전쟁이나 이승만 전 대통령에 관한 다큐 등이 상영되고 있는데 일종의 공론화가 되고 있고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송현광장 기념관 건립이 확정되면 (추후) 불교계와 협의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 시장의 이런 발언은 기존 입장과 배치되는 데다 송현공원 기념관 건립을 사실상 지지했다는 점에서 불교계의 배신감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송현광장 인근에 조계종과 태고종의 총무원사가 자리잡고 있는 만큼 불교계는 지난해부터 송현광장 기념관 건립 반대 입장을 꾸준히 전해왔기 때문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이승만 대통령은 보수 개신교에서는 ‘건국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높이 평가되지만, 불교계에서는 재임 기간 기독교 교세 확장을 위해 불교 내부갈등을 조장하고 불교를 탄압했던  최악의 인물로 꼽힌다.

1953년 8월 8일 델레스 미국 국무장관과 한미상호 방위조약에 가조인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그와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출처:연합뉴스)
1953년 8월 8일 델레스 미국 국무장관과 한미상호 방위조약에 가조인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그와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출처:연합뉴스)

이 전 대통령은 1954년 ‘아내와 자식을 거느린 승려는 사찰에서 나가라’라는 취지의 유시를 발표해 이를 계기로 불교계에서는 대처승(결혼한 승려)과 비구승의 대결이 벌어졌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이 전 대통령이) 정화 유시로 불교계 분열을 일으켜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점은 용서하기 어렵다”며 “국민 화합을 저해하고 종교 간 갈등을 부추기는 기념관 건립계획을 즉각 중단하라”고 강조했다. 조계종 측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서는 역사의 평가가 이뤄지겠지만, 그가 특정 종교에만 특혜를 주고 민족종교를 차별했다”며 “건립을 강행할 경우 서울시와 관계 단절을 포함해 강력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불교계에서는 오 시장의 친 기독교 행보에 대한 불만이 이미 임계점에 달한 상황에서 지난 2022년 1월 정청래 의원의 ‘봉이 김선달’ 발언으로 촉발된 대규모 승려대회가 재현되는 것 아니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면서 보수와 진보 진영 간 ‘종교 갈등’으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지난 9일~10일 이틀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는 이승만 기념관을 반대하는 조계종을 규탄하는 보수 단체들의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자유대한호국단은 “이승만 대통령이 왜색 불교를 몰아내고 우리나라 전통의 호국 불교를 재건한 것이 ‘불교계를 분열시킨 것’이라는 조계종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며 “조계종 논리를 따르자면 일본식 불교를 용인하면서 처(妻)를 두는 승(僧)들이 활개치게 내버려두는 게 좋았다는 것이자 조계종도 부활시키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계사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조계사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