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칼럼니스트

노래나 문학 작품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나 주제는 사랑과 이별, 그 다음이 삶과 죽음 정도이지 싶다. 사랑하고 이별하면서 웃고 울고, 사는 게 무엇인지 죽는 게 또 무엇인지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매미가 한여름 내내 홀로 울다 울다 지쳐 마침내 손톱만한 빈 허물 하나 남기고 사라지듯, 사람의 일생도 그러하다.

난폭하고 거칠고,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던 시절, 방실방실 미소 지으며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던 가수 방실이. 그녀의 원래 이름은 방영순이었다. 영순이도 정감이 가는 이름이지만, 예명으로 쓴 방실이도 미소가 지어지는 다정한 이름이다.

방실이 나이는 원래 1959년생이지만 호적에는 1960년생으로 돼 있다. 그때는 그랬다. 몇 날 몇 시 몇 분 어느 병원에서 나왔는지, 분명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시절이 아니었다. 일 년쯤 지나 살아 있으면 호적에 이름을 올리곤 했다. 태어난 지 만 1년이 되는 돌을 기념하여 잔치를 벌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호적이 실제 생년월일과 다르거나 심지어 이름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장에 가는 이웃이나 피붙이에게 면사무소에 들러 아이의 호적을 올려 달라고 부탁하면, 심부름하는 사람이 엉뚱한 이름을 대거나 다른 생년월일을 말해 호적과 실제 이름, 생년월일이 달라지는 것이다. 면 서기가 잘못 기입해 이름이나 생일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방실이는 대중들 앞에서는 1963년생으로 활동했다. 예전부터 연예인 나이라고, 실제보다 몇 살씩 낮춰 무대에 서고 연기도 했다. 한 살이라도 젊다 해야 더 매력을 느낀다고 여겼다. 호적 나이와 연예인 나이, 이렇게 두 번 나이를 깎아버리면 실제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 된다. 나이가 많으면 가수를 할 수 없던 시절이라, 나이를 속여야만 할 때도 있었다. ‘밤차’를 부른 이은하도 그 중 하나다.

단비처럼 우리들 삶을 어루만져 주었던 방실이었다. 그런 방실이가 어느 날 병으로 무대를 떠났다. 2007년, 17년 전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노래도 소식도 점점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일 오랜만에 그녀의 소식이 전해졌다.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였다.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내 이름도 묻지 마세요’라고 시작하는 ‘서울 탱고’는 그녀의 대표곡이다. 경쾌한 탱고 리듬에 가사를 붙인 것인데, 그 내용은 역설적으로 슬프고 아리다. ‘세상의 인간사야 모두가 모두가 부질없는 것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

고달픈 삶을 ‘부질없고’ ‘덧없고’ ‘구름 같은 것’이라며 긍정하고 체념한다. 사람들은 인생의 도나 진리를 깨친 듯, 술 한 잔 마시고 눈 지긋이 감고 그렇게 노래 부르며 삶의 무게를 견뎌냈다. 인생이라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도 있고, 반드시 살아내야만 할 때가 있고, 그냥 살아질 때도 있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고, 이 악물고 버티거나 체념하고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요즘 세대들에게는 하품 나는 소리겠지만, 노래 가사가 사람들을 시인처럼 혹은 철학자처럼 만들어 놓던 시절이 있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던 최희준 선생의 ‘하숙생’도 그런 노래 중 하나다. 송대관의 ‘쨍하고 해 뜰 날’은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위안과 희망을 갖게 했다.

걸레 스님이자 화가로 유명했던 중광(1934∼2002)의 묘비에는 ‘괜히 왔다 갔다’고 적혀 있다. 가수 김현식의 묘비에는 그의 앨범에 실린 ‘비처럼 음악처럼’에 들어 있는 가사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합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방실이는 ‘봄비 속에 떠났으나, 봄비 맞으며 돌아올 수 없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방실이의 묘비에는 어떤 말이 남겨질까. 인생은 구름 같은 것.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덕분에 한 시절 즐거웠고, 진심 감사하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