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총 걸으며 장 보는 시민들
“벌써부터 명절 분위기 물씬”
생선 고르며 가격 흥정하기도

시민들, 가격 묻고 발길 돌려
“고물가 시대 벗어났으면 해”
“가격 올려도 마음 편치 않아”

[천지일보 안양=김정자 기자] 지속되는 고물가·고금리 분위기 속 설 명절을 앞둔 전통시장에서 정겹고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반면 크게 오른 물가에 구매를 망설이는 시민과 근심하는 상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진은 안양 중앙시장에서 건어물 등을 파는 모습. ⓒ천지일보 2024.02.08.
[천지일보 안양=김정자 기자] 지속되는 고물가·고금리 분위기 속 설 명절을 앞둔 전통시장에서 정겹고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반면 크게 오른 물가에 구매를 망설이는 시민과 근심하는 상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진은 안양 중앙시장에서 건어물 등을 파는 모습. ⓒ천지일보 2024.02.08.

[천지일보=전국특별취재팀] 고물가·고금리 시대가 지속되는 분위기 속에서도 설 명절을 앞둔 전통시장은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다.

그러나 일부 상인과 시민들의 얼굴에선 그늘진 모습도 눈에 띈다. 다가오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정쟁을 일삼는 데다 국제적으로도 전쟁은 끊이질 않고 각종 범죄로 인한 사회 혼란까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본지는 최근 전국 몇몇 전통시장을 둘러보며 상인들과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설맞이 장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여 다소 경기가 조금씩 회복돼 보이기도 했지만, 크게 오른 물가에 결정을 망설이며 조심스러워했다.

◆정겨운 전통시장 분위기에 ‘화색’

오랜만에 정겹고 활기 넘치는 전통시장 분위기를 느끼며 화색을 보이는 곳도 있었다.

경기도 안양 중앙시장에는 많은 시민이 총총걸음을 하며 시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제사상에 놓을 전을 사기 위해 기웃거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곳에서 장사하는 김영순(65, 여, 가명)씨는 “안양시장은 재래시장으로 오래돼서 찾아오는 분들이 많다”며 “올해는 설 제사 비용이 25만원 이상이 넘는다고 하는데, 중앙시장은 다른 곳에 비해 10만원 정도는 절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이 오셔서 좋은 장거리로 맛있는 음식 만들어 드시고 행복한 시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평택=노희주 기자] 평택 전통시장에서 전을 팔고 있는 상인들 모습. ⓒ천지일보 2024.02.08.
[천지일보 평택=노희주 기자] 평택 전통시장에서 전을 팔고 있는 상인들 모습. ⓒ천지일보 2024.02.08.

평택에 있는 전통시장 역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다.

이서현(가명, 34, 경기 평택시 비전동)씨는 “시장에 오니 벌써 명절 기분이 나는 것 같다”며 “차를 가져왔는데 주차할 자리가 없을 정도로 시장 분위기가 활기차 보기 좋다. 또 시장으로 들어서니 반찬가게에서 만드는 다양한 전 냄새에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고 웃어 보였다.

문윤진(가명, 50대, 경기 평택시 원평동)씨는 “이번 명절에는 간단히 상을 차리려고 한다”며 “마트는 뭐 하나 사려고 해도 너무 많거나 적거나 한데 시장은 필요한 만큼 구매할 수 있어서 좋다”고 시장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천지일보 광주=김도은 기자]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 있는 생선가게 모습. ⓒ천지일보 2024.02.08.
[천지일보 광주=김도은 기자]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 있는 생선가게 모습. ⓒ천지일보 2024.02.08.

광주시 서구 양동시장의 한 생선가게에서는 시민들이 생선 매대에 놓인 조기 바구니를 가리키며 흥정하고 있었다. 상인 김순례(60대, 여)씨의 입가에는 연신 미소를 띠고 있었다.

김씨는 “설 연휴 전이라 그런지 2주 전부터 조금씩 매출이 늘면서 숨통이 트인다”며 “예전에는 자식들도 나눠주려고 많이들 샀는데 지금은 조금씩만 산다.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으로 장바구니는 가벼워졌지만,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배려심도 물씬했다.

김정인(69, 광주시)씨는 조기와 고등어를 신중하게 고르며 “자녀들이 올 텐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가격을 흥정했다.

[천지일보 부산=윤선영 기자] 부산 남항시장 내 손님 기다리는 과일들. ⓒ천지일보 2024.02.08.
[천지일보 부산=윤선영 기자] 부산 남항시장 내 손님 기다리는 과일들. ⓒ천지일보 2024.02.08.

부산에서도 상인들의 바쁜 손길과 걸음을 재촉하는 시민들에게서 활기가 느껴졌다.

20년째 어묵 가게를 운영 중인 김미자(가명, 60대, 여)씨는 “지난해보다 올해 손님들 장바구니에서 여유가 느껴졌다”며 “설을 계기로 경제가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24년째 족발집을 운영하는 정영자(60대, 여)씨는 새해 들어 경기가 좀 풀리는 것 같다며 기대감 섞인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크게 바라는 건 없다. 그저 가게를 찾은 손님들 살림이 넉넉해졌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저녁 장을 보러 온 주미경(50대, 여)씨는 “설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게 쉽지 않은데 설을 맞아 오랜만에 가족들을 볼 생각하니 들뜬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천지일보 서울=송연숙 기자] 서울 화곡본동시장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상인과 아이와 함께 과일을 사는 시민의 모습. ⓒ천지일보 2024.02.08.
[천지일보 서울=송연숙 기자] 서울 화곡본동시장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상인과 아이와 함께 과일을 사는 시민의 모습. ⓒ천지일보 2024.02.08.

◆물가 상승으로 물건 구매에 ‘주춤’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도 한숨이 깊어진 시민들도 있었다. 필요한 물건은 사야 하는데 물가가 이전보다 많이 올라서 구매하는 데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 화곡본동시장에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생각보다 손님이 많지 않았다.

손님을 기다리던 신미희(가명, 73, 여, 서울 강서구 화곡동)씨는 “장사가 잘 안된다. 밤이라도 까놓으면 사는 사람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며 “물가가 너무 비싸다. 하루빨리 물가라도 안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구리=이성애 기자] 구리에 있는 전통시장에서 상인들이 손님들에게 생선을 팔고 있다. ⓒ천지일보 2024.02.08.
[천지일보 구리=이성애 기자] 구리에 있는 전통시장에서 상인들이 손님들에게 생선을 팔고 있다. ⓒ천지일보 2024.02.08.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전통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이선희(가명, 50대, 여, 서울시)씨는 “서울에서 구리 전통시장을 찾아왔다. 확실히 서울보다 10~20% 더 싼 것 같다”면서 “그래도 물가는 여전히 너무 비싸다”고 하소연했다.

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허임선(가명, 60대, 여, 구리시)씨는 “사람들이 가격만 묻고 발길을 돌린다”며 “아무래도 물가가 오른 탓에 채솟값도 같이 오르니 사는 게 조심스러운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천지일보 원주=이현복 기자] 원주 전통 5일장이 열리고 있는 민속풍물시장에서 설 명절을 맞이해 제수용품을 마련하러 나온 시민의 모습. ⓒ천지일보 2024.02.08.
[천지일보 원주=이현복 기자] 원주 전통 5일장이 열리고 있는 민속풍물시장에서 설 명절을 맞이해 제수용품을 마련하러 나온 시민의 모습. ⓒ천지일보 2024.02.08.

서울과 구리 전통시장과 달리 강원도 원주 민족전통풍물시장은 장을 보러 온 시민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막상 구매 결정에는 망설이는 눈치였다.

최미숙(가명, 52, 여, 강원도 원주시 무실동)씨는 “제수용품과 생필품값이 너무 비싸 망설이고 있다”며 “오랜만에 만나는 형제들과 자식들 생각에 비싸도 사야겠지만 고물가 시대를 빨리 벗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현주(가명, 34, 여, 강원도 원주시)는 “설 명절을 앞두고 동네 시장 한 바퀴를 다 돌았는데 재료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물가도 너무 올랐다”고 부담스러워했다. 이어 “주변에서도 경제가 매우 어렵다 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채소나 과일 가격이 지난해보다 50% 이상 치솟다 보니 상인들 표정도 어두웠다.

광주 양동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이미정(가명, 50대, 여)씨는 “과일만 30년 넘게 팔아왔는데 이번에 사과나 배를 한 개씩만 사 가는 사람도 있었다”며 “물가가 워낙 오르다 보니 마트 가격과 비교해서 장 보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한순(80, 여, 광주 광산구 운남동)씨는 “안 오른 것이 없다”며 “예전엔 30만원으로 차례상을 차렸다면 지금은 50만원 정도 생각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15년 동안 택배 일을 해 왔다는 한 기사는 “이번 명절에는 선물 배달이 너무 없다”며 “예상을 뒤엎어 경기를 체감한다”고 말했다.

한과와 떡을 파는 최연숙(가명, 50대, 여)씨는 “정말 장사 안 된다”며 “예전엔 몇 킬로씩 구매했다면 지금은 딱 한 끼 먹을 정도만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전남 담양군 담양읍 재래시장에서 만난 상인도 “재룟값 상승으로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렸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고 푸념했다.

(김도은, 김정자, 노희주, 류지민, 송연숙, 윤선영, 이미애, 이성애, 이현복 기자)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담양군 담양읍 재래시장에서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천지일보 2024.02.08.
[천지일보 담양=이미애 기자] 담양군 담양읍 재래시장에서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천지일보 202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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