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북한의 군사행동이 점입가경이다. 지난주 북한은 무려 네 차례나 미사일을 쏘아댔다. 김정은은 북한의 노동당 총비서도 국무위원장도 아닌 북한의 미사일 총비서, 미사일 위원장처럼 보였다. 지난해 한반도의 두 개 국가론을 공식화하고 대한민국을 ‘제1 주적’으로 정한 북한답게 화력으로 ‘영토 평정’하려는 평양의 속내는 숨김이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과연 저들과 평화통일을 논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의 ‘위대한 공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김정은 정권과 정상회담을 하고 나라의 평화통일을 운운하는 게 얼마나 황당한 짓인지를 문재인 정권은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한반도 통일의 새로운 진로에 들어서야 할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마침 엊그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통일 포기 선언과 무관하게 정부는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 30주년을 맞는 올해 새 통일 구상을 발표할 것”이라며 “새로운 통일 방안 명칭에 ‘자유’를 반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했다. 적극 환영할 일이다. 북한 김정은의 ‘통일 불가’ 노선과 무관하게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통일 방안 마련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 발표 시기는 미정이지만 8.15 광복절이 유력하다.

김 장관은 이날 한 언론에 “기존의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도 자유민주주의를 통일의 기본 철학으로 반영한 것이지만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더욱 강조하고자 하는 취지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변화한 남북 관계와 국제 정세 등을 감안해 헌법적 가치를 더 충실히 구현할 수 있는 새 통일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자유는 헌법적 가치이자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철학”이라고 했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1994년 김영삼 정부는 노태우 정부 때 발표한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계승·발전시켜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내놓았고, 이는 현재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으로 지속되고 있다.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은 통일 과정을 ‘화해·협력→남북 연합→통일 국가 완성’ 3단계로 나눠 설정했다. 통일을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루겠다는 기조가 깔려 있다. 1단계 화해·협력 단계에서 실질적 교류 협력을 실시해 평화 공존을 추구한 뒤 2단계 남북 연합 단계에서 남북 간 법·제도적 장치를 체계화하고 3단계에서 단일 국가를 완성한다는 접근이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 말까지 이를 대체할 ‘신통일 미래 구상’을 발표하려 했으나 4월 총선 이후로 연기한 상태다. 통일장관 자문 기구인 ‘통일미래기획위원회’가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명칭에 ‘자유’가 들어가는 큰 방향은 확정됐다. 다만 구체적인 통일 방안 명칭과 세부 내용은 위원회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종전 통일 방안 명칭에서 ‘민족 공동체’ 또는 ‘민족’이라는 표현 유지 여부를 놓고도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의 초반에는 ‘민족’이라는 명칭을 빼자는 의견이 대두됐다. 하지만 올 초 북한 김정은이 남북이 더 이상 ‘동족’ ‘민족’이 아니라며 남북 관계를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전환하고 통일 포기 선언을 하면서 상황이 달라진 분위기다.

김영호 장관은 또 “동독이 ‘민족’을 부정하고 ‘두 국가’를 주장했지만 결국 실패하지 않았느냐”며 “북한이 ‘민족’을 부정하더라도 우리는 ‘민족’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김 장관은 이날 “앞으로 북한 외무성이 남북 관계에 직접 나설 수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우리 정부는 남북 관계는 통일부가 담당해야 한다는 입장이 분명하다”고 했다.

통일부를 두는 건 당연하지만 중요한 건 새롭게 만들 통일 방안이다. 통일 방안이 꼭 통일의 시나리오로 될지는 의문이지만 일단 통일대장정의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북한 정권과 평화를 이룬다는 어리석은 ‘망상’부터 집어 던져야 한다.

과거 정권들은 마치 평양 정권과 뭘 합의하고 결정하면 그것을 철학으로 간주하는 대오류를 범했다. 대표적 정권이 문재인 정권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일 업적’으로 자화자찬했다. 통일대강령에 민족을 넣든 자유를 넣든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정권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을 포용하는 통일정책이 진짜 통일정책이다. 평양과 서울에 두 개의 정권을 차려놓고 ‘통일노래’를 부르며 지내온 80년 세월이 얼마나 허망했는가. 이제 그 가면은 벗어버리고 진실로 통일의 대문을 열 생각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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