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생명 살리는 ‘게이트키퍼’ 돼서 자살률↓
군 장교 전역 후 ‘자살 예방’으로 인생 3막 써 내려가
자살 사망자 93.6% 경고신호 보내지만 인식률 24%
SNS에 자살 암시 글 보면 나 몰라라 말고 즉각 신고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이 최근 본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1.2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이 최근 본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1.25.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우리 주변에 누군가는 ‘죽고 싶다’, ‘멀리멀리 가고 싶다’, ‘다 내려놓고 싶다’는 말을 흘릴 수 있어요. 힘든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지 말고 자살 위험 신호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은 최근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 국민이 자살위험에 있는 사람을 감시해주는 게이트키퍼(생명 지킴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자살 사망자는 죽기 전 자살을 암시하는 경고신호를 보낸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지난 2015년~2022년 자살 사망자 980명에 대해 자살 유족 1120명에게 심리 부검 면담을 한 결과 93.6%는 사망 전 언어, 정서, 행동 등으로 경고신호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주변에서 이 신호를 인식한 비율은 24.0%에 불과했다.

죽기 전 보내는 신호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기만 해도 한 생명을 ‘생사의 문턱’에서 건져낼 가능성은 커진다. 정 센터장은 “게이트키퍼 교육을 전 국민에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이트키퍼는 자살 고위험군을 자살예방센터 등 전문가에게로 연결해주는 ‘문지기’다. 모든 국민이 내 주변의 생명을 자살 위험에서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2022년 기준) 자살로 1년에 1만 2906명, 하루에 35명이 죽고 있다”며 “나는 자살과 멀리 있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지인, 처조카, 사돈의 팔촌 등 누군가에게서 시그널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센터장의 ‘자살 신호 감시망’은 전국으로 뻗어있다. 그는 “울산 태화강 근처에서 누군가 죽으려 하는 걸 112에 신고해 살려냈다”며 “인스타그램이라든지 페이스북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이) 올라온 걸 보면 가만히 있지 말고 빨리 신고해줘야 한다. 온 국민이 감시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장교 출신으로 군대에 24년간 몸담았다. 군에서 그의 인생을 뒤바꾼 일을 경험했다. 자살한 장병의 어머니가 부대에 찾아와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뒹굴며 간부들에게 ‘우리 아들 살려내라’고 울부짖었던 모습을 봤던 것. 이 모습은 지금도 정 센터장의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있다고 한다.

다음은 정 센터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자살 예방에 뛰어든 계기는.

왜 어렵고 힘든 자살 예방을 하느냐고 주변에서 말한다. 군 생활을 24년쯤 하고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군에서 1년에 장병 70명이 자살로 죽어 나갔다. 청소년 자살도 안타깝지만, 장병들의 자살도 안타깝다. 19~23살 청년들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키워서 보냈더니 군대에서 자살하면 엄마들 심정은 오죽하겠나.

군 생활할 때 한 장병의 어머니가 여름 뜨거운 날씨에 아스팔트 위에서 뒹굴면서 ‘우리 아들 살려내라’고 간부들한테 소리 지르는 장면을 봤다. 결국 이성을 잃고 실신하더라. ‘광호야 엄마 왔다’고 하는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자살 예방을 해야 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자살 예방은 내 사명이다.

― 최근에 살린 사례가 있나.

한 30대 청년이 건물 열 군데를 올라다니면서 죽으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떨어지려고 건물 10층에서 밑을 내려다보니까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다행히 신고가 들어가서 경찰이 청년을 안전하게 귀가시켰다. 청년의 아버지가 아들을 상담해달라고 데려왔다. 상담을 진행하자 금방 자살 생각이 없어졌다.

― 어떻게 상담했나.

영상 분야를 전공한 대학생이었다. 영상 제작도 하고 그림도 그릴 줄 알았다. 문제는 약간 장애가 있는 아이다 보니 엄마가 아들을 아기처럼 과잉보호하고 있었다. 청년은 그게 싫어서 ‘간섭하지 말라. 죽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어머니하고 약속해서 자유권 보장해달라고 타협을 봤다. 그랬더니 (청년이) 너무 좋아했다. (상담도) 한의사가 진맥 보듯이 아픈 부위를 정확하게 찾아 해결해주면 된다. 앞으로 더 상담해야 하지만 일단은 성공적이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이 최근 본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1.2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이 최근 본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1.25.

― 일선에서 느끼는 자살 문제의 심각성은 어떠한가.

요즘 초등학교 5~6학년도 손목 자해를 한다. 청소년기가 앞당겨지고 애들이 성숙하다. 문제는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다 보니 자해한 사진을 자랑하듯 올린다. 강남에서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열고 뛰어내리는 사건이 있었다. 점점 어린 나이에 자해가 익숙해진다.

자해하고 안 하고는 큰 차이가 있다. 옥스퍼드 대학 연구 자료에 따르면 자해를 해본 아이들은 자살 시도 확률이 20배 높다. 자살 시도한 사람이 죽을 확률은 38배 높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다른 건 다 경험해도 좋은데 자해만큼은 경험하지 말라고 한다. 한번, 두 번 습관성으로 자해하다 보면 나중에 죽을 수 있다. 장난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 자해 행동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해를 많이 해서 손목에 칼자국이 빨래판처럼 나 있던 여성도 만났다. 습관을 바꿔주면 된다. 심리학에서 대체 행동이라고 한다. 자해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전화하라고 했다. 그러면 자해를 멈추고 나한테 전화한다. 이런 식으로 행동을 바꿔줬다.

― 자살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계층은.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노인이든 간에 목적을 가지고 ‘자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위험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구체적인 자살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위험하다. 이런 사람들은 신호를 은연중에 보낼 수 있다.

― 자살 위험 신호를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나.

게이트키퍼 교육을 전 국민에게 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 누군가는 ‘죽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 ‘멀리멀리 가고 싶다’, ‘다 내려놓고 싶다’ 등의 말을 흘릴 수 있다. ‘힘든가 보다’, ‘별거 아닌가’ 그러지 말고 자살 생각을 알아차려야 한다.

(고인이 된 사람의 자살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서) 안타까워서 울고불고하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교육하러 다니면 1~2명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본다. 이 교육이 너무 중요한데 내가 너무 늦었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1년 전 친구가 어떤 말을 남겼는데 죽었다는 거였다. 친구가 남긴 말은 ‘시골에 있는 방 좀 하룻밤만 빌려줘. 많이 힘들어서 쉬고 싶다’였다.

이런 것들이 하나의 신호인데 잘 모를 수 있다. ‘많이 힘들구나. 친구 시골에 조그만 집 빌려줄게. 거기서 쉴래? 나도 너 보러 한 번 갈게’ 이렇게 말했다면 살렸을 것이다.

― 자살 신호의 예시는.

직접적으로 ‘진짜 힘들다’, ‘죽고 싶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간접적인 표현이 더 많을 수 있다. ‘좀 쉬고 싶다’, ‘내려놓고 싶다’, ‘그동안 고마웠다’, ‘미안하다 친구야. 너한테 신세만 지고. 넌 행복해야 해’ 등 이별을 암시하는 말이다. 남자들은 비상금을 숨겨둔 위치를 알려주기도 한다. 통장 정리, 보험 해약, 부동산 명의 변경 등도 마지막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이 최근 본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1.2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이 최근 본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1.25.

― 징후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일반인은) 말 걸고 위로해주는 것까지밖에 못 한다. 빨리 전문가에게 연결해야 한다. 연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위급한 상황에 있다면) 112, 119에 빠르게 신고해야 한다. 최근엔 울산 태화강 근처에서 죽으려고 하는 사람을 112에 신고해서 도와줬다.

SNS 감시단도 필요하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이) 올라온 거 보면 가만히 있지 말고 빨리 신고해줘야 한다. 전 국민이 감시해주고 게이트키퍼가 돼야 한다.

나는 자살과 멀리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2022년 기준) 자살로 1년에 1만 2906명, 하루에 35명이 죽고 있다. 지인, 처조카, 사돈의 팔촌이든지 누군가는 (자살) 시그널을 보낼 수 있다. 난 자살과 무관하다고 나 몰라라 해선 안 된다.

― 지난해 교사가 연달아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는데.

교사 자살은 아픔이 많은 일선 교사들이 자꾸 번진 것. 한 명 죽고 두 명 죽고 세 명 죽고. 그걸 공감 자살이라고 한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 죽었다면 나도 거기에 빨려 들어갈 수 있다. 생각을 바꿔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살이 이어진 것이다.

많이 배우고 안 배우고의 문제가 아니다. 교사라고 해도 정신병리가 올 수 있다. 서이초 교사도 우울증이 왔다. 우울증에 걸리면 이성을 잃고 자살 충동을 많이 느낀다. 우울증 (환자의) 80% 이상이 자살 생각을 한다. 자기도 모르게 자살 생각이 들고 그중에 30%는 자살 시도를 한다. 15%는 실제로 사망한다. 그렇게 가는 거다.

― 자살예방상담전화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는지.

전화해도 만족할 상담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에서 운영하는 상담 전화의 경우 무료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사명감 있게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라에서 신경 써야 한다. 일선에 있는 상담사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들이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상담사를 전문성 있는 사람으로 뽑고 대접을 잘해줘야 한다. 전화번호 통일한 것도 잘했다.

― 정부의 자살 예방 정책에 미비한 점은 없는가.

우리나라는 핀란드나 일본에 비해서 아직 많이 미흡하다. 자살 예방에 쓰는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일본과 비교해서 한 10배 정도 적다. 조직도 미약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제대로 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대통령 직속 자살예방기구를 만든다든지 국무총리 산하 자살예방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컨트롤타워를 세워서 지자체까지 관리해야 한다. 현장 상담사들을 제대로 훈련하고 어느 정도 보상도 해줘야 한다. 현장에서 살리는 역할을 많이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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