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지전문대 겸임교수 법학박사 이문성
(전)명지전문대 겸임교수 법학박사 이문성

새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저명한 인사께서 ‘이게 사람 사는 나라 맞냐.’라고 탄식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자괴감으로 인해 이 땅에 사는 사람을 위한 희망과 기대 그리고 도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정치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리더 위치에 있는 지도자들의 숙명이자 책무이기도 하다.

2023년 기준 OECD 38개국 회원국 중에서 한국은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 아동빈곤율 3위, 주관적 행복도 35위, 아동청소년 삶 만족도 꼴찌라는 기록표를 보자면 ‘뭐하러 OECD 회원국에 가입해서 망신을 톡톡히 치르나.’ 하는 염치없는 한탄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통계자료 이면에 있는 한국민의 자화상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실 몇 가지를 알 수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레가툼연구소(Legatum Institute)가 2023년 발표한 국가별 번영지수를 보면 한국은 전체 167개 국가에서 29위를 차지했으니 그리 나쁜 성적을 거둔 편은 아니다. 특히 경제분야는 9위를 기록했으며 연구소가 공개한 보고서에도 새로운 기술 개발 의지, 탄탄한 교육 시스템, 전자제품과 기계 및 차량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수출실적, 무엇보다 첨단기술 부문 세계 1위 수출 등을 언급하며 한국의 경제적 번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자본분야는 147위에 불과하다. 공공분야에 대한 신뢰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법시스템 155위, 군(軍) 132위, 정치 114위에 그치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규범의 연결망인 사회적 자본 결여는 대한민국의 공적 신뢰도가 바닥수준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1981년 설립된 ‘비영리기구 세계가치조사’는 개별적·집단적 경제적 이익과 국가안보를 중시하는 ‘생존적 가치’와 자기표현·자기결정권 등 개인의사결정을 중시하는 ‘탈물질적 가치’, 종교의 중요성과 사회적 지위의 권위 및 가족관계 등에 무게를 두는 ‘전통적 가치’와 그에 상대적인 ‘합리적 가치’를 기준으로 세계인의 가치관 지도를 매년 그리고 있다.

세계가치관지도를 보면 생존적 가치와 전통적 가치가 결합된 대표적 국가로는 이란, 터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이며, 탈물질적 가치와 전통적 가치가 융합된 국가는 미국, 호주, 아일랜드,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이고, 생존적 가치와 합리적 가치로 엮인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 대만 등이며, 탈물질적 가치와 합리적 가치는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프랑스 등이다. 대한민국은 생존적 가치와 합리적 가치로 묶여 있는 중국, 러시아와 같은 국가군에 속한다.

한국인은 경제적 이익에 크게 좌우되며 민족적 경향을 띤 국가주의에 쉽게 빠질 수 있으면서도 전통과 종교, 가족 등 공동체 이념이 아닌 개인주의적 이익 추구를 합리화하는 데 급급한 가치관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한국인의 가치관은 한마디로 각자도생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참고로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 자살률 1위부터 5위까지 국가가 모두 생존적 가치와 합리적 가치의 결합범주에 속해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성장 과정을 봐도 한국인의 각자도생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다. 서울은 사대문에서 시작하여 기존 주변 지역을 파괴하면서 주거지역과 상업공간 등을 확대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마을’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공동체의 단위를 파괴해 왔기 때문에 오랜 기간 신뢰를 쌓은 이웃이란 존재하기도 힘들었다. 서울이라는 공간에는 아파트 지구와 비아파트지구, 강북지역과 강남지역이 있을 뿐이라는 악평도 가능한 이유다.

2024년은 총선의 해이다. 국민의 힘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컨벤션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국민의 힘이 내세우는 결정적인 정책 아젠다가 무엇인지 드러나고 있지 않다. 민주당도 죽여없애는 전쟁 같은 정치를 종식하고 살림 정치를 표방하고 있지만 당내 분열 조짐 막느라 다른 생각이 없는 듯하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각자 정치의 과오를 반성하면서 새로운 정치의 길을 걷겠다며 탈당했다.

빅텐트의 모습이 합당인지 아니면 선거연합인지 아직은 알 수는 없지만 모처럼 새로운 정치의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는 듯하여 반가운 마음을 금하기 어렵다.

제3당의 출현은 기존의 거대 양당에도 무시할 수 없는 파급력을 줄 수 있기에 전체 정치판의 새로운 도약과 혁신을 이끌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성과만으로 국가가 번영했다고 말할 수 없다. 생존적 가치 중심에서 벗어나 여성·아동·외국인·장애인·성소수자 등 소수세력과 빈곤층·피보호아동 등 소외계층에게도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이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정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나라가 사람 사는 나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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