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에서 갑(甲) ‘시작’과 ‘동방’ 상징

12지 동물 가운데 유일한 상상의 동물 ‘용’

용의 상징… 동양과 서양에서 확연한 차이

무신도 용왕(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천지일보 2024.01.01.
무신도 용왕(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천지일보 2024.01.01.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가 밝았다. 용은 십이지 동물 가운데 유일한 상상의 동물로 유일하게 하늘을 날 수 있으며 변화무쌍한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그려진다. 새로운 한해를 맞아 2024년 갑진년 ‘청룡의 해’가 갖는 의미와 민속문화 속 용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십이지신도 '진신'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천지일보 2024.01.01.
십이지신도 '진신'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천지일보 2024.01.01.

◆ 민속문화 속 용

“안 본 용은 그려도 본 뱀은 못 그린다”는 속담이 있듯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실존의 동물처럼 그려지는 일이 많다.

용의 모습에는 아홉 동물의 특징이 담겼는데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고 전해진다.

용(龍)의 상징성은 동․서양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서양 문화와 전설에서 용은 ‘악마’ ‘사단’ ‘괴물’과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입에서는 불을 내뿜고 일종의 무기와 같은 꼬리를 갖고 있다. 중세시대 용은 악의 상징이었고 ‘성경’에는 ‘용’을 ‘사단’ ‘마귀’로 표현했다.

전 세계적으로 용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인도의 ‘나가’, 그리스의 ‘히드라(hydra)’, 서양의 ‘드레곤(dragon)’과 고대 오리엔트 문명 속 괴물들도 용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서양에서는 어둠과 악의 상징인 용을 퇴치하면 영웅이 되는 반면, 용을 수호신처럼 여기는 동양에서는 용의 보호를 받으면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기우제 제문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우리 민속에서 용은 비와 물을 상징하는 수신(水神), 우신(雨神) 등으로 나타난다. 조상들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용에게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다. ⓒ천지일보 2024.01.01.
기우제 제문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우리 민속에서 용은 비와 물을 상징하는 수신(水神), 우신(雨神) 등으로 나타난다. 조상들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용에게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다. ⓒ천지일보 2024.01.01.

우리 민속에서 용은 비와 물을 상징하는 수신(水神), 우신(雨神) 등으로 나타난다.

“비바람 따라 구름 가고, 구름 따라 용도 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조상들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용에게 비를 빌었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용에게 풍어와 안녕을 빌었다. 이렇게 용이 강우를 지배하는 수신으로 신앙되면서 많은 용신신앙이 발생했다.

신라시대 사해제와 사독제, 고려시대의 사독제, 조선시대의 각종 용신제와 기우제 등이 모두 용을 대상으로 한 국가적인 의식으로 생명의 원천이자 농경의 절대요건인 물의 풍족함을 기원하는 제의였다.

일반 민가에서는 이름에 ‘용’자가 들어간 지형지물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으며, 용이 잠들면 가뭄이 온다고 생각해 그 적수인 호랑이나 고양이처럼 호랑이를 대신할 만한 짐승을 연못에 집어넣어 용을 깨우기도 했다.

또한 민간에서는 집을 지을 때 상량문의 양쪽에 물을 상징하는 용 ‘룡(龍)’과 거북 ‘구(龜)’를 써 넣어 불을 막아 집을 보호하려는 바람을 담았다.

2001년부터 시작된 경복궁 근정전 중수공사 때 화재 예방을 위한 부적 2점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하나는 붉은색 장지에 작은 크기의 ‘龍’ 글자 1000여개를 써서 크게 ‘水’자 형태가 되도록 만든 부적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같은 붉은색 장지에 발톱이 다섯 개 달린 오조룡(五爪龍)를 그린 부적이었다.

이 또한 목조건물인 경회루와 근정전을 화재로부터 막기 위해 물을 다스리는 용의 힘을 빌린 것이다.

평남 강서 강서대묘 현실 동벽 청룡 벽화 모사도 ⓒ천지일보 2024.01.01.
평남 강서 강서대묘 현실 동벽 청룡 벽화 모사도 ⓒ천지일보 2024.01.01.

◆ 왕권과 호국룡의 상징

용의 또 다른 상징은 바로 ‘왕권’이다. 일찍이 왕이나 황제 같은 최고 권력자는 곧잘 용에 비견됐다. 하늘 기후의 순조로움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농경문화권에서 군왕과 용은 자연스럽게 동일시됐다.

이러한 관념의 순환을 통해 용은 왕권이나 왕위의 상징이 됐고, 임금과 관계되는 것에는 거의 ‘용’이라는 접두어를 붙였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 임금의 자리를 용상(龍床), 임금의 옷을 곤룡포(衮龍袍), 임금의 즉위를 용비(龍飛)라고 부른 것이 그 예다.

고대신화에서는 왕통의 신성성을 확보해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용을 차용하기도 헸다. 이는 대표적인 건국신화 중 하나인 ‘주몽신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는 천신으로서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지상에 내려와 유화의 아버지 하백이 사는 수중에도 들어간다. 용이 이끄는 수레는 아무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한 마리도 아니고 다섯 마리의 용이 수레를 끈다는 설정은 지상의 존재인 황제와 차별화해 해모수에게 천상의 존재라는 신성 자격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백제의 무왕(武王) 서동은 부여 남쪽 연못가에 살던 과부와 용이 사통해 출생했으며,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광주 북촌의 부잣집 딸이 구렁이와 교혼해 태어났다. 고려 태조 왕건은 작제건과 용녀 사이에서 태어난 용건의 아들이다.

한편 용은 불교의 수호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가 삼국통일 이래 독자적인 호국신앙으로 발전함에 따라 용도 ‘호국룡’의 성격을 띠게 됐으며, 이는 ‘삼국유사’ 만파식적조에 잘 나타나 있다.

“문무왕이 평소 ‘짐은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어 불교를 높이 받들고 나라를 지키기를 원한다.’라고 했다. 그 유언으로 문무왕의 뼈를 묻은 곳을 대왕암(大王岩)이라 이름하고,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했으며 후에 용이 형상을 나타낸 것을 보던 곳을 이견대(利見臺)라 이름하였다.”

불교와 관련해 용은 창사전설(創寺傳說)에도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의상대사가 창건한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부석사(浮石寺)다.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유학가서 머물던 집의 주인 딸 선묘는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는 의상이 탄 배가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용이 돼 도왔다. 신라에 돌아온 의상은 영주 봉황산에 절을 짓고자 했지만, 이곳을 먼저 차지한 무리의 위협을 받게 되자 선묘가 이번에는 큰 바윗덩이로 변해 무리 위로 떨어질 듯 말 듯 하자 무리가 혼비백산해 달아났고, 그로 인해 ‘떠 있는 돌’이라는 의미의 ‘부석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청룡(조선고적도보) ⓒ천지일보 2024.01.01.
청룡(조선고적도보) ⓒ천지일보 2024.01.01.

한편 동양 철학에서 갑(甲)은 10개의 천간 중 첫 번째로 ‘시작’을 의미하며 동방을 상징한다. 또한 오행사상에서 청색은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동쪽을 상징하기 때문에 동양에서 ‘청룡’은 사신(四神)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사신(四神)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다스리는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 4마리의 영수(靈獸)를 통칭하며, 네 방위에 따라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후현무를 뜻한다.

사신의 개념은 중국 고대사회에서 우주를 상징적으로 이해하는 관념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따르면 청룡은 동방의 일곱 별자리를 상징하고, 오행 중 나무와 봄을 관장하며 비와 구름, 바람과 천둥번개를 비롯한 날씨와 기후, 식물도 다스린다고 여겨졌다. 물을 다스린다고 해 바다를 다스리는 신을 용왕(龍王)이라 부르며, 바닷가 어민들이 전통신앙으로 용왕제를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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