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위원

중국과 한국은 이젠 경쟁 관계다. 한때 중화권 국가를 포함 33%에 가까운 수출을 중국에 했다. 미국의 11%, 일본 8%, 유럽 5%를 다 합쳐도 중국에 못 미쳤다. 그러나 중국에 수출하는 한국 비중은 20%대까지 내려갔다.

산업 기술발전과 중국의 자체 경쟁력 제고로 1992년 8월 24일 수교 이후 근 30년간 누렸던 중국 특수는 사라져간다. 그럼에도 1998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였던 한국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는 결정적 도움이 됐던 나라가 중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혁개방 이후 산업사회 진입과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기에 중국은 한국의 앞선 당시 기술과 경험이 필요했다. 한중 양국의 상호 보완성이 있었다. 지구촌이라는 이름과 데탕트의 국제 분위기 속에서 비약적 경제교류를 통한 이익의 공유가 양국은 존재했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시 중국만 빼고 모든 서방 진영은 미국과 금융망이 연결돼 있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고 있었다. 오히려 금융시장이 개방돼 있지 않았기에 중국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미국 대체 구세주로 등장한다.

세계 모든 나라가 어려워졌다. 수출로 돈을 벌었던 중국, 미국 추종 세계 각국이 어려워져 수출이 줄어드니 방법을 찾은 끝에 미국이 하는 방식이었던 재정을 통한 내수시장 확충이었다.

중국 자체로 빚을 내 중국 내 전국적 지방 공항, 고속철도, 고속도로, 아파트, 건설 등 사회간접 자본투자와 기간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세계의 각국 물건을 사주는 미국의 역할을 대신해 준 것이다. 필요 이상의 빛낸 일명 부채 발행을 통한 국내 투자로 소비를 창출했다. 덕분에 근접의 한국을 비롯한 각국이 중국에 수출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중국의 빛낸 경기 활성화 정책으로 세계 모든 나라는 미국을 대체한 중국에 수출해 위기를 극복해 간다. 1만 달러를 넘어 2만 달러대 언저리에서 헤매고 있었던 한국이 3만 달러 선진국 진입에 중국의 덕을 독특히 보았다.

중국도 이익 본 부문들이 많다. 내수시장이 자연스럽게 커졌다. 정보화 사회로 진입해 한국과 경쟁하는 국가로 탈바꿈했다. 반도체만 빼고 조선, 철강, 자동차, 항공기, LCD 등 전자 산업 모든 영역에서 한국을 능가하거나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됐다. 한국산 수입은 줄고, 한국의 대중 수출도 나날이 줄어든다. 정치적 체제 자체도 상이해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 중심의 정치 경제 국제 구도에 더 진입하면서 중국과 자연스럽게 멀어져 가고 있다.

중국 측에서도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문제는 중국의 과잉 부채 발행을 통한 대내외정책이 족쇄가 됐다. 국내 과잉투자만이 아니라 일대일로 육상 해상 신종 실크로드 정책을 통한 세계 영향력 확대의 시진핑 정책도 경제 규모 이상의 부채 발행을 통한 정책이다. 게다가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기술 패권 경쟁이 중국을 사면초가에 놓이게 했다.

한국은 필연적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봐 중국과 ‘불가근불가원’의 국가로 갈 것이다. 그런데 이젠 경쟁 관계가 된 중국, 90년대 말부터 일본과 경쟁 관계가 현재 일정 부문 능가하는 국가로 변신한 한국의 모습을 상기한다면 다가올 중국의 모습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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