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민희 기자] 북극발 한파가 이어진 23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한 목회자가 노숙인을 위해 무료로 옷을 나눔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2.23.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북극발 한파가 이어진 23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한 목회자가 노숙인을 위해 무료로 옷을 나눔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2.23.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돈 있고 집 있는 분들은 가져가지 마세요. 옷은 한 개씩만 가져가세요.”

북극발 한파가 이어진 23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한 여성이 돗자리에 잠바와 옷, 바지, 신발 등 겨울 옷가지를 늘어놓으며 목청을 높였다. 광장에 펼쳐진 ‘겨울옷 무료 노점’으로 노숙인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인기는 단연 겨울 잠바였다. 크고 두툼한 잠바가 제일 먼저 동났다. 노숙인들은 서로 옷을 골라주기도 했다. 지나가던 노인들도 기웃거리며 옷을 가져가도 되냐고 물었다.

혹독한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노숙인에게 겨울은 더욱 시린 계절이다. 이번 주 내내 전국에 내려졌던 한파 특보는 이날 아침까지 계속됐다. 서울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5도, 최저기온은 이보다 더 낮았다.

신발 한 켤레를 챙긴 김성민(가명, 50대 후반)씨의 눈썹에는 마스크에서 나온 입김으로 물방울이 맺혔고 인중에는 콧물이 얼어붙어 있었다.

1년째 서울역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를 이용하고 있다는 김씨는 저녁에 시설에서 추위를 피한 뒤 낮에 서울역 인근을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김씨는 “등이 너무 아프다.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곽창갑(53)씨는 빨간색 패딩 점퍼를 비롯해 겉옷, 신발 등을 두둑하게 챙겼다. 곽씨는 35년 전 ‘옛날 서울역’ 시절부터 거리 생활을 해오다 5년 전 고시원을 거쳐 임대주택에 들어갔다. 곽씨는 입고 있는 잠바를 가리켜 보이며 “이것도 여기서 준 옷”이라고 말했다.

곽씨는 이어 “(노숙인 중에는) 겨울에 술 많이 먹고 바깥에서 자다가 돌아가시는 분도 많다”며 “재작년 서울역에서 15명이 죽어 나갔다”고 말했다.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북극발 한파가 이어진 23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한 목회자가 노숙인을 위해 무료로 옷을 나눔하고 있다. 30분쯤 지나자 옷이 바닥을 보였다. ⓒ천지일보 2023.12.23.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북극발 한파가 이어진 23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한 목회자가 노숙인을 위해 무료로 옷을 나눔하고 있다. 30분쯤 지나자 옷이 바닥을 보였다. ⓒ천지일보 2023.12.23.

무료 나눔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채 못돼 돗자리에 있던 옷가지가 거의 팔렸다. “허리 사이즈가 몇이냐” “이 잠바는 어떠냐”며 옷 가게 상인처럼 옷을 나눠주던 여성은 서울역 인근 교회의 목회자였다.

그는 7년 전부터 서울역에서 노숙인들에게 선교활동을 하다가 무료 급식, 옷 나눔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1년에 200명씩 (노숙인들이 거리에서) 죽어 나간다”며 “여기 계신 분들은 항상 춥고 배고파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겨울철 추위 취약 계층인 노숙인을 보호하기 위해 53개조 124명으로 구성된 거리상담반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 최대 675명이 이용할 수 있는 응급 잠자리도 제공하고 있다.

노숙인 시설을 이용하면 추위를 피할 수 있지만 시설을 꺼려 한겨울에도 밖에서 자는 노숙인이 적지 않다. 서울시에 따르면 한파 경보가 발령된 지난 20~21일 한파 쉼터에서 노숙인 732명이 취침했다. 최대 수용 인원 875명 중 절반 정도만 이용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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