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세계 10위의 경제력, ‘오징어 게임’과 BTS로 세계를 열광케하는 ‘K-컬처’, 535만명으로 전 세계 4위의 골프 인구 등 한국은 외형적으로만 보면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잔잔히 살펴보면 선진국이 되기에는 아직 멀다. 복지, 빈부격차, 노동, 임금, 자살, 부패구조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현재 국가의 위상이 선진국 수준에 올라있지 않다고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생각하는 것이다.

골프만 해도 그렇다. 남녀프로골프의 국제경쟁력 확보, 골프장과 골프인구의 지속적인 증가, ICT를 활용한 스크린골프 활성화 등을 놓고보면 이미 골프 선진국 대열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정작 국내 골프는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부자들만의 전유물’로 부정적인 시선을 받으며 선진국과 같은 환경을 좀처럼 만들지 못하고 있다.

19일 국회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한국골프산업학회 주최의 ‘한국 골프산업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는 발제를 통해 “한국 골프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이바지 해야한다”고 밝혔다. 오 대표는 한국에서 골프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로 상대적 박탈감을 먼저 지적했다. 오랫동안 골프는 가진 자들만을 위한 운동으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골프장은 주말 기준 평균 그린피가 22만원을 넘고 부킹난이 극심해 대부분의 골퍼들조차 이용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 대표는 영국, 미국과 같은 골프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아무나 골프의 재미를 느끼며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 미국 등에서 12년간 생활한 그가 경험한 선진국 골프장은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 그는 세계 100대 골프장에 든 스코틀랜드 크루던 베이 GC에서 만난 12살과 10살 형제의 얘기를 소개했다. 골프장 측의 유소년 골프 프로그램에 참여한 두 소년은 매일 무료로 골프를 치며 미래에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골프스타 로리 맥킬로이를 꿈꾸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이러한 스코틀랜드 골프장의 형제 모습을 저녁 10시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과 대비된다고 했다. 프랑스와 인접한 도버해협의 해안가 골프장에선 평일 날 아이들이 골프를 치고, 한 남성 골퍼는 리트리버 강아지와 함께 골프를 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에든버러 성을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골프장은 50만원짜리 ‘레저카드’를 사면 1년간 무제한으로 골프를 즐길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한국 골프가 선진국과 같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선 양적 성장과 함께 기업 비즈니스 개념인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ESG)’ 세 가지 핵심 영역을 중심으로 질적인 변화와 혁신을 이뤄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 골프가 오랫동안 쌓여왔던 구조적인 문제를 탈피하기는 결코 쉽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비전을 갖고 골프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한다면 영국 등과 같은 선진국형 골프국가로 발돋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골프 관련 세제 개편, 골프장 이용료 합리화, 골프에 대한 인식 개선, 디지털 친환경 산업으로서의 제도적 요인 등을 통해서이다.

오 대표는 조동화 시인의 시 ‘나 하나 꽃피어’에서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는 한 구절을 소개했다. 풀뿌리가 성장해 큰 꽃밭을 이루듯 한국 골프도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 나중에 골프 선진국으로 이어지는 길을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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