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청년단연합회 별동대 대원 활동

제34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기념 사진_1942년 10월 25일. 문일민(맨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은 광복의 순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에서 활동했고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환국했다.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3.12.12.
제34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기념 사진_1942년 10월 25일. 문일민(맨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은 광복의 순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에서 활동했고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환국했다.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3.12.12.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이 국가보훈부, 광복회와 공동으로 문일민·안혜순 선생을 2023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는 12월 한달간(1일~31일)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문일민의 흥사단 이력서, 제34회 임시의정원 의원 기념사진 등을 전시한다.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문일민, 안혜순은 1928년 부부의 연을 맺고 동지로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문일민(1984년~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1962년))은 1894년 12월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나 1919년 3.1운동 참가 후 중국으로 건너가 7월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해 교육을 받았다. 이어서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해 별동대 대원으로 활동했으며, 1920년 8월 3일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국내 특공대 일원으로 평양에 들어가 평남도청 투탄 의거를 성공시켰다.

제239단우 문일민 흥사단 이력서_1930년 5월 13일. 문일민이 흥사단에 들어갈 당시 제출했던 이력서로 ‘처 안혜순’이 기재돼 있다.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3.12.12.
제239단우 문일민 흥사단 이력서_1930년 5월 13일. 문일민이 흥사단에 들어갈 당시 제출했던 이력서로 ‘처 안혜순’이 기재돼 있다.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3.12.12.

이후 중국 관내로 이동해 1924년 중국 윈난강무학교(雲南講武學校)에 입학해 학업을 마치고 1925년 2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평안남도 의원에 선출된 것을 비롯해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 흥사단 등에 참여해 활동을 이어나갔다.

1932년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 후 임시정부가 중국 관내를 이동하다 충칭에 정착하기까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전개했다. 임시정부의 충칭 도착 후 1943년 4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부 총무과장, 이듬해 10월에는 참모부 참모에 임명됐다. 그는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환국했다.

안혜순(1903년~2006년, 건국포장(2019년))은 1903년 1월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일찍이 중국으로 이주했고 1928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문일민과 결혼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에 머물렀다.

1932년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 준비 과정에서 한인애국단 단장 김구의 요청에 따라 의거에 사용될 빈 도시락을 준비했다고 전해진다. 1935년 2월 한인애국부인회의 정기총회를 주도했으며, 이듬해 12월에는 임시정부의 요청으로 각종 기념일에 필요한 기념 전단을 인쇄하고 배부하는 일을 수행했다.

남편 문일민과 임시정부를 돕기 위해 충칭으로 건너간 안혜순은 힘든 망명생활을 묵묵히 견뎌내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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