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등 어린 정신환자 증가세
대기자 많아 응급실까지 찾아

韓·홍콩도 코로나 후 환자 증가
“전부터 아이들 위기” 주장도

‘스마트폰·SNS 원인’ 찬반 논란
美교육청, 틱톡·유튜브 고소

ⓒ천지일보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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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이솜 기자] 크리스토퍼 루카스 박사는 지난 12시간 동안 갈 곳이 없어 응급실을 찾은 어린이들을 돌보며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녔다.

모두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었다. 이곳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 있는 업스테이트 대학병원에는 지난 9월 어린 정신질환 환자들이 8명 있었다. 한 방에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17세 소녀가, 그 근처에는 SNS에서 괴롭힘을 당한 후 자해를 시작한 14세 소녀가 치료는 받는 중이었다.

가장 어린 신규 환자는 행동 장애가 있는 5살짜리 소년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외래 진료를 받게 하려고 했으나 대기자가 너무 많아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아이는 어머니는 칼로 찌르려고 하고 자살하고 싶다고 말했고, 놀란 어머니는 그를 응급실로 데려왔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묘사한 업스테이트 대학병원 응급실의 상황이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에서 어린 정신건강 환자들이 느는 추세다. 환자 급증으로 치료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절망에 빠진 가족들은 마지막 방편으로 응급실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 아동병원협회가 38개 아동병원에서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정신건강 치료를 위해 응급실을 찾은 아동의 수는 2019년 대비 2022년에 20%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 자살이나 자해로 응급실에서 도움을 구하는 어린이 환자도 50% 급증했다.

WSJ는 어린 정신건강 환자의 유입으로 미국 전역에서 응급실이 포화 상태에다가 어린이 전문병원과 종합병원 모두 치료가 지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주요 소아과 및 응급의학 단체는 지난 8월 공간과 가용 인력 부족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들이 응급실에서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지난 3년 반 동안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응급실에 15번 이상 온 17세 아들의 어머니 케이티 브라운은 WSJ에 “아들을 응급실에 데려간다고 해서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며 “말 그대로 폭풍이 지나가거나 아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있을 때까지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정신건강 문제로 이 병원의 소아 응급실을 찾는 수는 2016년 660명에서 작년 3000명에 달하는 수로 증가했다. 올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휴스턴에 위치한 텍사스 어린이 병원의 응급실에서는 2019년 40~50명의 어린이가 정신건강 문제로 치료를 받았으나 최근 한 달간 이 수는 400~500명으로 늘었다.

◆홍콩 청소년 극단 선택 올해 2배↑

불안, 우울증 및 기타 정신건강 문제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어린이들 사이에서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팬데믹으로 사태는 악화했다.

팬데믹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도 역시 새로운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 연구팀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코로나19 전후 청소년의 뇌를 분석했다. 팬데믹 이후 청소년들의 뇌는 이전에 비해 대뇌피질 표면이 양쪽 뇌 반구 모두에서 비정상적으로 얇아진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는 주로 만성 스트레스나 외상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코로나19 이후 홍콩에서는 청소년 자살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대 자살연구예방센터 폴 입 시우파이 교수는 지난 8~10월 자살을 시도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홍콩 청소년이 22명으로 집계됐다며 이는 11명이던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 이 중 20건은 학기가 시작된 직후인 9~10월 사이 발생했다고 입 교수는 전했다.

그는 “이러한 사례가 급증한 것은 학생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추세가 증가하고 있으며 매우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교육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우울증 진료를 받은 6~11세 사이 환자는 3541명으로 2018년 1849명에 비해 91.5% 늘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중고생도 2018년 144명에서 2022년 193명으로 증가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상위 5개 청소년 정신질환의 연령별·성별 진료 실인원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청소년 진료 인원은 평균 65.5%나 폭증했다.

미국 니머스 아동병원의 사장 겸 CEO인 로렌스 모스는 코로나19만이 이런 추이를 만들어낸 게 아니라고 꼬집었다. 그는 최근 chief healthcare executive에 “사람들은 종종 코로나19가 아동 정신건강 위기를 초래했다고 말한다”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아동 정신건강 위기는 있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았고 깨닫지 못했을 뿐이며 코로나19는 상황을 악화시켰을 뿐”이라고 말했다.

ⓒ천지일보 2023.11.19.
ⓒ천지일보 2023.11.19.

◆美 SNS 업체들 고소… “아이들 정신 망쳐”

청소년들의 건강 문제가 취약해진 데에는 많은 요소들이 거론되지만 미국 등 일부 국가들은 스마트폰과 SNS가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SNS의 과도한 사용이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 캐나다에서는 휴대폰으로 SNS를 스크롤하며 몇 시간 동안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공격성, 우울증, 불안감을 더 많이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웨스턴 대학교에서 신경과학 및 학습 장애 분야의 캐나다 연구 의장인 엠마 듀어든과 연구팀은 지난 16일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에서는 어린이들에 SNS를 끊임없이 노출시키는 자체가 공중보건 위기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계하는 모양새다. 지난 7월에는 미 전역 교육청 200곳이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지방법원에 틱톡·메타·유튜브·스냅 등 주요 SNS 회사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내기도 했다.

미 42개 주와 컬럼비아 특별구도 지난달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를 어린이와 청소년의 SNS 중독 문제로 고소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SNS를 이용하면서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해쳐 불안, 우울증, 심하면 자살 충동까지 겪은 것에 대한 손해배상이 핵심 내용이다. 알파벳, 메타 등 기업들은 소송 무효화를 시도했으나 지난 14일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전문가들은 SNS가 청소년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불완전하다고 지적한다.

미 존스 홉킨스 대학 딜런 셀터만 부교수는 지난 5월 psychologytoday에 “SNS가 청소년 자살 증가를 설명하는 주요 변수라면 (미국 외)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증가세가 나타날 것”이라며 “그러나 데이터에서는 그런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 영국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을 인용해 호주, 캐나다, 영국, 미국에서만 10대 청소년의 자살률이 늘었다며 오히려 이는 경제적 불평등 수준이 높은 나라들이라고 평가했다. 또 국가별 청소년 자살률의 증감과 SNS 사용량에는 연관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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