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노인 시대 앞뒀지만 갈 곳 없는 노인들
노인여가복지시설 턱없이 부족… 노인들 발길도 줄어
탑골공원, 종묘공원, 실버영화관서 시간 때우는 일상
“복지시설서 존재하는 ‘텃세’… 신입 노인 장벽 낮춰야”
“시설 이용률 높이면 복지 사각지대 노인 관리도 가능”

고령화 시대를 넘어 ‘초고령화 시대’를 향하고 있다. 전체 인구 중 노인 인구는 18%를 넘어 20%에 달할 전망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동시에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어 노인 인구의 비중은 급격히 커지고 있다. 노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복지혜택이 지원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비한 부분은 존재한다. 고령화 기획을 통해 문제점을 조명해 보고 대책을 제시한다.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이들은 노인여가복지시설을 이용하는 대신 종로 탑골공원, 종묘광장공원 등 외부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천지일보 2023.10.12.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이들은 노인여가복지시설을 이용하는 대신 종로 탑골공원, 종묘광장공원 등 외부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천지일보 2023.10.12.

[천지일보=김민희, 이한빛 기자] “나이 먹은 사람이 갈 데가 있어야지. 이런 데라도 와서 앉아있는 거야.”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인근의 실버영화관. 올드 팝송이 흘러나오는 영화관에 노인 20여명이 있었다. 가슴에 브로치를 달고 곱게 화장한 김복순(가명, 86)씨는 상영관 앞 테이블에 홀로 앉아있었다. 영화 시간을 기다리거나 일행을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김씨는 “영화 구경을 안 해도 여기 와서 시간 보내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그의 말대로 주변에는 김씨와 같은 노인들이 테이블마다 앉아있었다. 김씨는 오후 3시가 되면 종로3가역 인근 벤치로 자리를 옮겨 2시간을 더 채운 뒤 오후 5시가 돼서야 집으로 향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까지 병원에서 90세 노인을 간병했다. 환자의 아들 내외가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고 찾기 시작한 게 영화관이다. 김씨는 “지하철 타고 쭉 가다가 내려서 한참 있다가 집에 갈 때도 있다”며 “여기(영화관) 오면 그래도 사람들이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온 황문(78)씨도 “노인들이 여가를 즐길 데가 없으니까 여기 와서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요새 노인들은 전철이 공짜니까 어디든 다 돌아다닌다”며 “나는 주로 여기가 거점”이라고 말했다.

◆천만 노인 시대 “갈 곳 없어”

이날 종로 실버영화관을 비롯해 탑골공원, 종묘광장공원 등에서 만난 노인들은 하나같이 “노인들이 갈 곳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내년이면 노인인구 1000만 시대를 앞두고 있지만 노인을 위한 여가복지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 기준 65세 이상 노인은 95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8% 이상을 차지한다. 2025년에는 노인인구가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 진입이 전망된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기대 수명은 약 83세. 은퇴 후 20여년의 세월이 주어지는 셈이지만 노인들이 시간을 보낼만한 곳이 마땅찮은 게 현실이다.

지난 2021년 기준 전국의 노인여가복지시설은 노인복지관, 경로당, 노인교실을 합쳐 약 6만개소다. 시설은 대부분 75세 이상 고연령층이 이용하고 있어 65세 이상 75세 미만의 ‘전기 노인’을 위한 시설도 부족한 상황이다.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지난 5일 서울 종로 실버영화관 매표소에서 노인들이 영화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12.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지난 5일 서울 종로 실버영화관 매표소에서 노인들이 영화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12.

노인복지시설을 찾는 노인 수도 해마다 줄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초고령 사회 노인의 다양성과 사회 정책적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경로당 이용률은 2008년 46.9%에서 2017년 23.0%로 급감했다. 노인복지관 이용률도 같은 기간 17.5%에서 9.3%로 줄었다.

노인복지시설 이용을 희망하는 노인 수 역시 감소하고 있다. 향후 경로당과 노인복지관 이용을 희망하는 비율은 각각 57.9%에서 36.8%, 35.9%에서 27.5%로 감소했다.

◆노인들이 대접받는 ‘탑골공원’

노인들이 노인복지시설 대신 찾는 대표적인 장소는 종로 탑골공원이다. 탑골공원에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인들이 무료 급식과 간식을 받으려고 줄을 선다. 노인들은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천안, 수원, 인천 등 각지에서 몰려든다. 무료 급식 외에도 탑골공원 인근의 술집과 식당, 이발소 등의 비용이 저렴해 종로3가 일대는 노인들 사이에서 ‘대접받는 곳’으로 통한다.

지난 5일 오전 8시께 탑골공원을 둘러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각자의 지역명을 적은 종이상자가 사람 대신 줄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기철(가명, 70)씨는 지난 3월 말 허리가 아파 식당 봉사를 다니지 못한 뒤로 탑골공원에 나오게 됐다고 한다. 한씨는 “(탑골공원에 대해) 이야기만 듣다가 와보니까 천국이 이런 천국이 없다”며 “시간을 잘 보낼 수 있고 (급식을) 무료로 주는 데가 많다”고 말했다.

영등포에 사는 박영태(가명, 80)씨는 탑골공원 인근의 노인복지센터에서 식사를 해결한 뒤 공원에 와서 시간을 보낸다. 박씨는 “있는 거라곤 시간하고 입밖에 없다”며 “동네에서 아는 사람 만나면 얻어먹으러 다니는 것 같이 보여 창피하니까 뚝 떨어져 (이곳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탑골공원을) 2~3년 다니다 보니 서로 인사하고 지낸다”며 “한겨울에도 잔뜩 껴입고 나온다”고 말했다.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줄을 서서 종교 단체가 나눠주는 무료 간식을 받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12.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줄을 서서 종교 단체가 나눠주는 무료 간식을 받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12.

탑골공원과 인근의 종묘광장공원에 노인들이 몰리는 건 지하철역에서 가깝고 1, 3, 5호선이 모두 지나간다는 점도 한몫한다. 경기 성남에 사는 이성묵(86)씨는 날마다 종묘광장공원을 찾는다. 이씨는 “성남에도 남한산성이 있지만 전철이 안 다녀서 이쪽(종묘광장공원)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노인들 발길 줄어가는 복지시설

노인들이 탑골공원을 찾는 사이 노인복지시설은 외면받고 있었다. 천지일보가 만난 노인 중에는 탑골공원에서 무료 급식을 먹은 뒤 매일 복지센터에 가서 탁구를 친다는 노인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답답해서 안 간다” “복지센터에서 밥 먹으려면 4000원을 내야 한다” 등의 반응이 주를 이뤘다.

노인복지시설은 노인 중에서도 고연령층이 몰려 이용을 꺼리게 된다는 반응도 있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70대 이기영(가명)씨는 “거기(노인복지시설) 가면 아주 노인네가 돼 버린 느낌이 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허리 치료를 받기 위해 일을 쉰 뒤로 탑골공원을 매일 나오다시피 한다”며 “서울에 노인들이 갈 데가 너무 없다”고 푸념했다.

노인복지관과 경로당에서 제공하는 여가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노인복지관을 이용하는 한 70대 남성은 여성경제신문에 “바둑, 한글 서예 쓰기, 검도, 단전 호흡, 댄스 스포츠, 당구 등 일상생활에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만 구성됐다”며 “민간 분야에서 비용을 내면 더 나은 환경에서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저비용’으로 구성하니 만족도가 높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노인복지여가시설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9%는 경로당 및 노인복지관을 찾는 이유를 ‘단순 친목 도모’라고 답했다. 프로그램 이용에 대한 만족도는 79%에 달하는 이용자가 ‘불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장기판을 구경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12.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장기판을 구경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12.

◆“노인복지시설 이용률 높여야”

전문가들은 노인들이 노인복지시설을 이용하게 하려면 장벽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순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노인들이 탑골공원에 가는 대신)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을 이용해야 하는데 약간의 장벽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노인복지관을 자주 이용하는 분들 사이에 텃세 같은 게 있다. 경로당도 마찬가지”라며 “여기저기 끼기 어려운 분들이 (탑골공원에) 가신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한 예방책으로 “(노인복지관과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새로운 사람이 오면 잘 받아주고 포용하도록 노력하고, 기관에서도 새로운 분들이 잘 정착하도록 도움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인복지시설 이용률을 높이게 되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에 대한 관리가 용이해져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남현주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복지기관에 가지 않는 분들이 기관에 가는 분들보다 위험에 처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노인에 대해 “특히 사회적인 상황에서 배제된 분들이 많다”며 “이런 경우 우울증으로 가게 되고, 우울증으로 가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 결국 고독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 교수는 “경로당이나 노인복지시설 등을 활용하지 않는 분들이나 혼자서 은둔 생활하는 분들이 사회에 나올 수 있게끔 복지시설 등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들을 발굴하는 게 핵심”이라며 경기 성남시에서 시행 중인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우수 사례로 들었다.

성남시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동마다 주민들로 협의체를 구성해 경제적, 정신적, 신체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주민 발굴 및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협의체를 통해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협의체) 구성원들이 복지관이나 주민센터에 가서 얘기하면 사각지대 발굴에 대한 자원을 갖고 확인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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