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무료급식소에서 어르신이 점심 도시락과 선물을 받아 이동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무료급식소에서 어르신이 점심 도시락과 선물을 받아 이동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9.

[천지일보=임혜지, 이승찬 기자] “자식들? 다 집에 있지. 같이 있어봤자 뭐해. 각자 시간 보내는 거지.”

추석 당일인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안에서 만난 김호재(76, 남)씨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무료급식소를 찾았다. 김씨는 “추석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게 없다”며 “자식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대화를 하겠나. 심심하고 갑갑하니까 친구들도 만나고 밥도 먹을 겸 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추석인 이날 상점들이 문을 닫아 거리는 한산했지만, 무료급식소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붐볐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9.

점심시간인 정오가 되기도 전에 무료 급식소 앞에는 300명에 가까운 노인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 추석 연휴에 더 붐비는 무료급식소

11시 30분경, 김씨에게 관계자가 번호표를 나눠줬다. 김씨가 받은 번호표에 찍혀있는 숫자는 ‘231번’. 무료급식소 관계자는 추석이나 설날 등 연휴나 어버이날 등과 같은 기념일에 노인들의 발길이 더 늘어나 준비한 수량이 금방 동이 난다고 했다.

원각사가 운영하는 급식소의 이날 점심은 비빔밥과 미역국이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원각사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의 추석 점심 메뉴. ⓒ천지일보 2023.09.2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원각사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의 추석 점심 메뉴. ⓒ천지일보 2023.09.29.

밥을 먹고 나오는 노인들의 손에는 송편부터 소면, 양말 등 각종 간식과 생필품이 담긴 흰색 봉지가 들려있었다. 원각사 측에서 추석을 맞아 노인들을 위해 마련한 선물이라고 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원각사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서 추석을 맞아 준비한 선물 ⓒ천지일보 2023.09.2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원각사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서 추석을 맞아 준비한 선물 ⓒ천지일보 2023.09.29.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뿐 아니라 탑골공원 후문 쪽에서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 총재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도 긴 줄이 생겼다.

11시 50분쯤, 낙원상가 쪽에서 시작된 줄은 탑골공원 정문까지 이어질 정도였다. 원각사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한 노인은 곧바로 후문 급식소 줄에 합류하기도 했다. 그는 “저녁으로 먹을 도시락을 미리 받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날 탑공공원에서 만난 노인들은 쓸쓸함을 호소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이 그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이 그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9.

김현식(89, 남)씨는 “집에 있기 외로운데 어디 갈 곳도 딱히 없어서 나왔다”며 “추석 당일이라서 사람이 없을 줄 알고 나온 건데 이렇게 많아서 나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자식도 있고 손주도 있지만 대화를 하지 않아 외롭다”며 “집에선 외톨인데, 나오면 또래 친구들도 있고 해서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최충식(80, 남)씨도 고독함을 이기지 못해 무작정 나온 곳이 탑골공원이라고 했다. 친구들이 모여 음식이라도 나눠 먹으면 조금이라도 낫지 않을까 해서다.

최씨는 “탑골공원 오면 항상 보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 설날이나 추석 때도 급식소에서 받은 떡 등을 나눠 먹곤 했다”며 “북적이며 음식을 나눠 먹으면 행복하다”고 웃어보였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9.

원각사 무료급식소 관계자는 “명절 때와 같은 연휴에는 지방자치단체 복지시설 등이 쉬는데 우리까지 쉬면 노인들은 종일 굶어야 하지 않느냐”며 “연휴 기간에서는 더 각별하게 든든히 챙겨드리려고 신경 쓴다”고 말했다.

추석에 쓸쓸한 건 이들뿐만 아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주민들도 추석이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골목에서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추석인 29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골목에서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9.

10년째 쪽방 생활을 하는 이모(70, 여)씨는 “남편을 일찍 여의다 보니 자식도 없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이후 형제들도 다 흩어졌기 때문에 추석에도 돌아갈 가족이 없다”며 “추석이라 해도 사실 쪽방에 갇혀 지내면 명절을 피부로 못느낀다. 그저 봉사단체에서 떡국이나 주면 감사히 먹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최경순(64, 여)씨는 “아들이 사업을 하다 망한 후로 나홀로 떨어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아들이 처가에 얹혀 살고 있기 때문에 명절에 찾아가기가 어렵다.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눈물이라도 나지 않을텐데 마음만 아프다”고 울먹였다.

돈의동 쪽방촌에서는 추석을 맞아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2023년 추석 명절 공동 차례상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주민들은 합동차례상 앞에 절을 올리고 음식을 이웃과 함께 나눠 먹으며 추석의 정을 나눴다.

◆ 꿈을 위해… 추석에도 책 놓지 못하는 청년들 

불가피한 이유로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홀로 추석’을 자처하는 이들도 있었다.

노량진에서는 수많은 청년들이 가족들과 추석을 보내는 대신 비장한 각오로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노량진은 대입수능학원부터 각종 공무원 학원까지 온갖 학원과 고시원이 즐비한 대표적인 학원가다.

이날 학원가 거리는 한산했지만, 독서실이나 스터디 카페에는 10대 수험생부터 20대 공시생까지 청년들이 적지 않았다. 노량진역 주변에 위치한 고시원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책을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험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서울 노량진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한 수험생이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3.09.29.
서울 노량진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한 수험생이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3.09.29.

이날 점심 노량진의 컵밥 거리에서 만난 김유석(가명, 25, 남)씨는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고향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최근 최종 시험에서 떨어진 후 마지막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서울로 올라와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시험에 합격해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다짐으로 노량진에서 명절을 보낸다는 그는 “부산에서 서울 올라온 지 한달 밖에 안 됐다”며 “차라리 명절 기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 내려갔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소방공무원을 준비하는 남승호(28, 남)씨도 “이번 명절에는 공부할 양이 많아서 고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라 아깝게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고시식당도 문을 닫은 추석 당일 점심시간 주변 컵밥거리에선 취준생으로 보이는 청년 2~3명이 모여 컵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컵밥집을 운영하는 정모씨(65, 여)는 “명절에 문을 연적이 없다가 올해 추석 분위기가 어떨까 하고 처음 열었는데 연휴에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 놀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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