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전주에선 상품권 행사로 북적
담양 알밤 굽기 행사 추석 느낌
대부분 시민들 물가 비싸 망설여
“필요한 것만 사고 되도록 줄여”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 선언 이후에도 물가 상승,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묻지마 범죄 등으로 명절 전통시장의 분위기는 활기차고 풍성한 느낌보다는 차분하고 썰렁한 분위기다. 사진은 보성 녹차골보성향토시장. ⓒ천지일보 2023.09.27.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 선언 이후에도 물가 상승,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묻지마 범죄 등으로 명절 전통시장의 분위기는 활기차고 풍성한 느낌보다는 차분하고 썰렁한 분위기다. 사진은 보성 녹차골보성향토시장. ⓒ천지일보 2023.09.27.

[천지일보=전국특별취재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 선언 이후 첫 추석을 맞아 최근 본지가 전국 전통시장을 둘러봤다. 활기찬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대부분 전통시장 분위기는 침울하기만 했다. 물가 상승에 여러 가지 사건 사고도 한 몫 더한 분위기다. 시민들의 가벼워진 지갑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어머니와 함께 전북 전주에서 채소 장사를 한다는 국성민(가명, 40대, 남)씨는 “옛날엔 없어도 추석만큼은 풍성했는데 지금은 옛날 같지 않다”며 “아무래도 물가도 오르고 오염수 방류 탓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여수=이봉화 기자] 시민들이 지난 22일 여수 교통시장에서 생선을 사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7.
[천지일보 여수=이봉화 기자] 시민들이 지난 22일 여수 교통시장에서 생선을 사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7.

◆오염수 방류에 “생선 사기 조심스러워”

지난 19일 본지가 찾은 노량진 수산시장은 추석을 1주일 넘게 앞둔 상황이라 그런지 조금은 한산한 분위기였다.

김지은(가명, 60대, 성남시 분당구)씨는 “가족 모임이 있어 횟거리를 사러 왔다”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조금 걱정되지만 나라에서 안전하다고 하니 믿고 사러 왔다”고 말했다.

추석 준비를 위해 장을 보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씨는 “추석 직전에 올 예정”이라고 답했다.

경기도에서 수산시장을 찾은 한 시민은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해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철수(가명, 60대, 남, 안양시)씨는 “횟거리 사러 온 김에 제수용품을 사러왔다”며 “우리 가족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계없이 해산물을 찾는다”고 말했다.

손주들에게 줄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러 왔다는 김꽃분(가명, 81, 여,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씨는 “명절마다 아들이랑 같이 홍어횟거리를 사러 왔는데,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뭘 먹어도 괜찮은데 손녀, 손주들이 걱정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노량진 수산시장과 달리 전북 전주의 한 전통시장에 있는 상인들은 근심 섞인 반응을 보였다. 생선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표정도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하던 장사를 이어받아 생선 장사를 한다는 박금자(50대, 여)씨는 “우리 가게는 오래전부터 명태포를 잘 떠서 유명한데도 손님이 없다”며 “경기도 안 좋고 최근 일본 오염수 방류와 겹쳐서 사람들이 생선 사는 걸 더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업종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한탄했다.

[천지일보 서울=송연숙 기자] 시민들이 지난 19일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온누리상품권 환급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7.
[천지일보 서울=송연숙 기자] 시민들이 지난 19일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온누리상품권 환급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7.

◆“오염수 방류에도 차례상에 생선 뺄 수 없어”

부산 부전시장과 자갈치 시장에는 명절을 며칠 앞둔 지난 22일 장을 보러 오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강미영(가명, 70대, 여, 부산시 수영구)씨는 “오염수다 뭐다 해도 오랜만에 가족들이 찾아오는데 생선이 빠질 수 없다”며 “명절 아니면 얼굴 보기 어려우니 물가가 올라도 추석 맞이 준비는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한 가게에서는 반짝 특가 판매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정교영(50대, 여, 부산시 동래구)씨는 “평소에도 전통시장을 즐겨 찾는데, 물가가 너무 올라 걱정이 많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서민 경제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많이 내놨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바다와 인접한 인천 연수구 옥련시장에는 명절을 사흘 앞둔 25일 예상과는 다르게 시민들이 북적이지는 않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최연옥(62, 여,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씨는 “처음에는 걱정되고 불안했는데 아직까지는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니 필요할 때만 생선을 사 먹는다”며 “추석에도 필요한 만큼만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정의석(40, 남, 인천시 연수구)씨는 “인건비를 줄여볼 심산으로 다른 일을 하던 부인을 불러 문을 열었다”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걱정되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찾아 주는 손님이 있어 열심히 일하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 생각한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천지일보 광명=김정자 기자] 한 상인이 지난 24일 광명전통시장에서 동태전을 굽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7.
[천지일보 광명=김정자 기자] 한 상인이 지난 24일 광명전통시장에서 동태전을 굽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7.

◆물가 상승에 예전 인심 찾아보기 힘들어

전남 보성군 녹차골보성향토시장을 찾은 시민들은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며 사는 게 부담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승희(가명, 70대, 보성군 보성읍)씨는 “미리 사면 싸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찍 나왔는데, 예상한 것보다 비싸서 놀랐다”며 “사과, 배 등 과일이 특히 비싸고 생선도 예전보다 가격이 많이 오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작년에는 추석 준비에 30만원 정도 쓴 것 같은데 올해는 40만원을 넘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차례상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찾았다는 이혜리(가명, 53, 여, 보성군 보성읍)씨도 “전통시장이 마트보다 저렴하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물가가 올랐다는 게 실감이 난다”며 “작년보다 30~40% 정도 비싼 것 같다. 사과는 2배, 배는 1.5배 정도 오른 것 같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물가가 많이 올라서 그런지 상인들의 인심도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명전통시장에서 만난 임은정(가명, 여, 55)씨도 “제사가 있어 제수용품을 구매하긴 했지만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전남 여수의 오일장인 서시장에서는 그나마 상인들과 시민들의 기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시장에서 30여년 이상 김밥집 장사를 해 온 조인옥(가명, 62, 여, 여수시)씨는 “이번 연휴는 길어서 그나마 기대를 좀 해 본다”고 말했다.

담양의 한 전통시장에서는 올해 수확한 토실토실한 햇밤 굽는 냄새에 추석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김지선(40대, 여,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씨는 “추석에는 매년 전통시장을 찾게 된다”며 “연탄불 위에서 익어가는 구수한 알밤 냄새도 전통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인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시민들이 지난 25일 인천 연수구 옥련시장에서 채소를 사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7.
[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시민들이 지난 25일 인천 연수구 옥련시장에서 채소를 사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7.

◆차례상 음식, 파는 걸로 대체하기도

물가 상승 영향에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판매하는 음식으로 대체하겠다는 시민들도 의외로 많았다.

인천 옥련시장을 찾은 강미선(57, 여,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씨는 “물가가 너무 올라 조금씩만 준비할 생각”이라며 “차례상에 올릴 전은 추석 전날 시장에서 만들어 파는 것을 사려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비싼 물가에 간단하게 장만하겠다는 시민도 있었다. 최은옥(가명, 62, 여, 인천시 미추홀구 학익동)씨도 “재료가 비싸기도 하고 가족과 함께 먹을 것이라 집에서 조금만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추석 명절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전통시장을 일부러 찾은 시민들도 있었다.

지난 22일 대전 도마큰시장에서 만난 김자원(62, 여)씨는 “외국에 사는 딸 가족이 이번 추석에 놀러 와서 우리 전통음식을 실컷 맛보게 해주려고 일부러 시장을 보러 왔다”며 “농축산물 가격이 다소 올랐지만 기쁜 마음으로 쇼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온누리상품권 할인 행사가 있어 전통시장에서 농축산물을 재구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동현, 김미정, 김정자, 김지현, 류지민, 송연숙, 윤선영, 이미애, 이봉화, 천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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