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 이후 4년 만에 8조원 송금

식량 등 인도적 목적으로 사용 예정

이란에서 풀려나 카타르 도하 공항에 도착한 미국인 수감자들. (출처: 연합뉴스)
이란에서 풀려나 카타르 도하 공항에 도착한 미국인 수감자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정부가 19일 그간 국내에 동결돼있던 이란의 석유 수출 자금이 카타르 등 제3국으로 이전됐다고 밝혔다.

미국과 이란의 수감자 맞교환용으로 한국 돈이 관여된 것인데, 제재라는 방식으로 남의 돈을 동결했다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또 푸는 등 막무가내 행태라 일각에선 미국 정부에 대한 반감이 거세지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외교부, 동결자금 이전 공식 확인

외교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그간 대이란 금융제재로 한국에 동결돼있던 이란 자금이 관련국 간의 긴밀한 협조 아래 제3국으로 성공적으로 이전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지난 2019년 동결된 이후 약 4년 만에 송금된 셈이다.

또 “정부는 동결자금이 이란 국민의 소유라는 명확한 인식 아래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해서 관련국과의 외교적 소통과 협의를 지속해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동결자금 문제 해결은 당사국들뿐만 아니라 카타르, 스위스 등 제3국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바, 정부는 이들 국가의 건설적 역할에 각별한 사의를 표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란 동결자금은 카타르로 이전된 후에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식량, 의약품 구입 등 인도적 목적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외교부는 카타르에 정부의 인도적 교역 경험을 공유했다고도 전했다.

정부는 동결자금 이전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향후 보다 발전돼 나가길 기대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동결자금 해결 절차가 진행 중이던 지난 4일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과 통화하며 올해 수교 61주년을 맞아 양국이 새로운 60주년을 열어가자며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앞서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전날 국영방송을 통해 방영된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수감자 맞교환을 진행할 것”이라며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이 오늘 이란에 들어올 것”이라고 공개했다.

◆미국의 행태에 ‘횡포’라는 지적도

이란 동결자금의 내막은 이렇다. 이란은 지난 2010년부터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이란 중앙은행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한국에 판매한 석유 대금을 받았다. 한국으로부터의 수입품 대금도 이 계좌에서 지불했다.

하지만 이후 이란과의 관계가 틀어지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나아가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이 계좌가 2019년 5월 동결됐다. 이에 이란의 석유 판매 대금 약 60억 달러(약 8조원) 규모의 돈이 묶이게 됐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당시 제재로 이란에 동결자금을 돌려줄 수 없자 인도적 교역 등 여러 우회책을 강구해 왔다. 코로나 상황 속 제재 예외가 인정되는 의약품·의료기기 등 인도적 물자를 이란에 공급하고 이란은 대금을 동결자금으로 지급하는 것 등이다. 또 동결자금을 활용해 이란의 유엔 분담금도 대납했다.

이란과의 관계 설정을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으나 막대한 동결자금 규모에 비하면 이런 방식의 액수는 제한적이어서 불만은 계속됐고 급기야 2021년 이란 혁명수비대가 오만 인근 해역에서 한국 국적 선박을 억류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동결자금 문제가 한-이란 관계의 최대 걸림돌로 작동했지만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해외에 수감 중인 미국인 석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이란과의 협상에 나섰고, 동결자금을 풀어주는 걸로 양국에 수감된 자국민을 맞교환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의 횡포라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국제질서가 힘에 의한 국제질서의 작동원리를 고려하자면 미국이 원하는 대로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 “어쨌든 대이란 관계의 장애물이 해소된 만큼 보다 활발한 교류가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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