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천지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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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산업의 쌀’로 등극한 반도체에 이어 ‘제2 산업의 쌀’로 대두되는 자동차 배터리(이차전지) 양극재의 수출 급증으로 K-배터리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을 중국이 가져가고 있는 현실을 인지한다면 마냥 웃고만 있을 순 없는 실정이다.

양극재를 만들 때 들어가는 원료인 리튬과 전구체 등 핵심 원료 화합물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해 쓰고 있기 때문에 양극재 수출로 수입이 늘수록 중국으로 빠지는 지출 규모도 커지고 있다.

구체적인 수치로 살펴보면 이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무협)가 지난 5일 공개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지침이 우리나라 배터리 공급망에 미칠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의 이차전지 양극재 수출액은 74억 9000만 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6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의 이차전지 양극재 수출은 2019~2022년 연평균 77.7%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이차전지 양극재 수출 급증은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들이 유럽·미국 등에 배터리 공장을 지은 것에 따른 효과로 분석된다.

하지만 양극재 원료인 리튬과 전구체의 수입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 탓에 중국에 대한 무역수지는 악화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리튬과 전구체 무역 적자는 각각 50억 9000만 달러, 21억 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대중국 무역 적자는 리튬과 전구체가 각각 30억 달러, 21억 1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는 전체 리튬에 대한 무역 적자의 59%, 전체 전구체에 대한 무역 적자의 97%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상반기에만 이차전지 양극재 수출로 58억 1000만 달러의 무역 흑자를 냈지만, 이 가운데 51억 1000만 달러가 원료 비중으로 중국에 넘어간 셈이다. 이는 이차전지 양극재 수출로 국내 기업들이 벌어들인 수익의 약 88%에 해당하는 수치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이차전지 제조용 화합물의 규모는 우리나라의 전체 대중 무역수지를 악화하는 주요한 원인이 될 만큼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섞은 전구체에 넣어 삼원계 양극재를 만들 때 쓰이는 리튬 화합물인 수산화리튬의 경우 대중국 무역 적자가 지난 2021년 5억 5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32억 1000만 달러로 급증했다.

더구나 올해는 상반기에만 대중국 무역 적자가 30억 2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 같은 추세를 지속한다면 수산화리튬 단일 상품에서만 대중국 무역 적자가 올해 60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는 양극재 제조용 원료 화합물에 대한 우리나라의 자체적인 생산 능력 확보가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협도 이 같은 점을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이뿐 아니라 무협은 미국 IRA 대응에 있어서도 양극재 제조용 원료 화합물에 대한 자체 생산 능력을 강조했다.

무협은 보고서를 통해 “전구체를 수입에 의존하면 세액공제를 받기 위한 적격 핵심 광물 비율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수입할 경우 해외 우려 기관(FEOC) 조건에 따라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은 IRA에 따라 전기차 세액공제에 조건을 달아놓고 있다.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오는 2025년부터 비율과 관계없이 배터리 생산 과정에 ‘해외 우려 기관’에서 조달한 핵심 광물을 사용해선 안 된다.

아직 해외 우려 기관에 대한 명확한 세부지침이 제시되지 않아 제3국에 진출한 중국 기업, 제3국 기업, 중국 기업이 설립한 합작회사(JVC)가 해외 우려 기관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선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만약 해외 우려 기관에 중국 기업이 포함될 경우 리튬과 전구체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게 돼 타격이 불가피해진다.

국내 배터리 업계가 증가하는 양극재 수요에 대응하고 IRA 상의 핵심광물 세액 공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전구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전구체 공정의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것으론 충분치 않아 보인다.

K-배터리 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정부도 힘을 써줘야 한다. 기업과 더불어 리튬 등 주요 광물에 대한 조달처를 다변화하고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적극적인 대응만이 K-배터리 산업의 경쟁력 제고는 물론 지속 가능한 발전도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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