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북한 경제는 크게 인민경제와 제2경제로 나뉜다. 인민경제가 일반경제라면 제2경제는 군수공업, 즉 무기를 비롯한 온갖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경제다. 고난의 행군을 계기로 북한의 일반경제는 사실상 무너졌지만 제2경제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군수공장 현지지도로 그 정황이 어느 정도 파악됐다. 김정은의 군수공장 방문의 경우 상당수가 비공개하거나 공개하더라도 군수공장임을 밝히지 않은 채 일반 공장처럼 위장 공장 명으로 소개해 왔다. 군수공장으로 추정되는 곳을 방문해 보도할 경우 보통 두 가지 보도상의 특징을 보인다.

첫째, 생산 품목이나 실태를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내용과 사진을 제한해 생산 관련 일반적 사항만 보도한다. 둘째, 수행자 및 영접자에 군수 담당 관료들이 들어가 있는 경우다. 당 군수공업부, 제2경제위원회, 국방과학원, 군 지휘부 등의 인물이 수행자로 동행한다. 이번에 7년 전의 제2경제 위원장이었던 조춘룡이 재등장해 김정은을 수행했는데 우리 언론은 그를 당 군수공업부장으로 소개했으나 그동안 주석단 등장이 전혀 없었던 점을 고려할 때 제2경제위원장으로 보는 것이 정석일 것 같다. 공개되는 수행자 명단만으로도 해당 공장의 역할이 일반 군수물자 생산인지 중요 무기 관련 생산인지 어느 정도 식별이 가능하다. 집권 이후 김정은 군수공장 현지지도는 개별 공장 방문 건수로 따지면 총 53건이다.

공식적으로 ‘군수공장’이라고 밝힌 세 차례 보도(총 9개 공장 방문)를 제외한 나머지 45건은 군수공장이라고 밝히지 않았지만, 군수공장으로 알려져 있거나 추정되는 공장들이다. 김정은의 ‘중요 군수공장’ 현지지도를 보도한 2023년 8월 6일 자 노동신문에서 “지난해 11월 9일 공장을 현지 지도하시면서 제시하신 대구경 방사포탄 계열생산을 위한 능력조성사업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한 데 대하여 높이 평가”한다고 밝혀 당시 보도하지 않았지만, 2022년 11월 9일 김정은이 ‘비공개’로 대구경 방사포탄 생산공장을 방문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통 일반 공장 현지지도의 경우 생산품목 및 실태, 과업 등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사진으로 생산품을 확인할 수 있도록 보도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방문 단위 건수는 여러 군수공장을 날짜를 달리하며 현지지도한 후 하나로 묶어 보도했을 때, 보도 ‘건수’로 1회 집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보도 내에서 여러 공장 단위를 방문했을 경우 각 공장 1개를 방문 건수로 집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군수공장’ 용어를 쓰며 김정은 현지지도를 처음 보도한 것은 2022년 1월 28일 자 노동신문에서다. “중요 무기체계를 생산하고 있는 군수공장을 현지지도 했다”고 밝힌 이날 보도에서 5장의 관련 사진을 공개하고 조선중앙TV를 통해서도 영상을 공개했는데 “국방공업의 현대성을 상징하는 본보기공장”이라고만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공장인지, 어떤 무기를 생산하는 공장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군수공장’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구체적으로 어떤 무기를 생산하는 공장인지를 밝힌 것은 이번 8월 6일 자, 14일 자 현지지도 보도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8월 3~5일 군수공장 현지지도는 언급된 생산 무기와 사진으로 볼 때, 중요 군수공장이 밀집한 자강도 일대로 추정된다. 강계뜨락또르종합공장(26호공장, 로켓 및 미사일, 방사포탄, 어뢰), 강계정밀기계종합공장(93호공장, 소총·기관총, 탄약류, 지대지·지대공·공대지 등 각종 미사일 및 포탄류, 다연장로켓, 기뢰, 어뢰), 장자강공작기계공장(고사포 자동화 조준발사장치), 압록강다이야공장(미사일 발사차량 타이어 전문), 2·8기계종합공장(65호공장, 권총류와 자동소총류, 고사총과 소형 로켓포) 등으로 추정된다.

8월 11~12일 현지지도 한 군수공장들의 경우 전술미사일 및 발사대차 생산공장은 각종 미사일을 생산하는 제4기계공업국 산하 평남 남포의 태성기계공장(중장거리미사일), 평남 개천의 1월 18일 기계공합공장(미사일 및 탱크 부품), 평양의 1월 25일 기계공장(미사일 종합공장), 산음동병기연구소(장거리미사일 최종조립) 등을 꼽을 수 있다. 전투장갑차 생산공장의 경우 제2기계공업국 산하 평남 개천의 1월 18일 기계공합공장(탱크, 장갑차, 미사일발사대), 자강도 성간강철공장(제81호공장, 미사일 발사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북한의 군수공장은 더 있지만 과연 이 공장들이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군수공장 역시 전력공급과 원자재 공급이 안 되면 멈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러시아 전쟁 수요에 맞게 무기수출을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과연 북한 군수공업이 재개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북한 정권이 막대한 외화벌이 기회로 활용한다면 북한 경제 개건의 최후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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