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부터 권력 쟁탈 목적
소말리아 政군-저항세력 충돌
32년 내전 30만~50만명 사상
고향 잃은 실향민 110만 이상

알 샤바브 등 이슬람 무장단체
샤리아법 더욱 엄격하게 적용
소수 기독교인 가혹하게 박해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굵직한 이슈 중 분쟁과 전쟁은 단골손님이다. 그중 종교분쟁은 사상‧이념‧정치가 복잡하게 얽혀,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양상을 보이곤 한다. 대표적인 종교분쟁으로 꼽히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당사자인 소위 ‘이팔 분쟁’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개신교 등 굵직한 종교가 얽혀 성지를 놓고 다툼을 한 지 벌써 75년이다. 이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가 얽힌 분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가 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는 것일까. 본지는 기획 연재를 통해 각국 종교분쟁을 조명하고 분쟁의 심각성을 재조명하고, 평화의 필요성을 살펴본다. 

2017년 8월 26일 이슬람 급진무장단체 알샤바브 소탕에 나선 미군과 소말리아군의 합동작전으로 어린이 3명을 포함한 민간인 10명이 희생됐다. 사진은 인양된 10구의 시신. (출처: AP/뉴시스)
2017년 8월 26일 이슬람 급진무장단체 알샤바브 소탕에 나선 미군과 소말리아군의 합동작전으로 어린이 3명을 포함한 민간인 10명이 희생됐다. 사진은 인양된 10구의 시신. (출처: AP/뉴시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종교 분쟁과 권력 다툼 등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 중 하나로 분류된 나라가 있다. 오랜 내전으로 어두운 낯빛의 땅이 돼버린 소말리아다.

소말리아 내전은 나이지리아 분쟁과 함께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가장 높은 단계인 ‘전면전(全面戰)’급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제 테러조직과 연계된 테러리즘으로 분쟁의 동향에 미치는 영향이 계속해서 증가해서다. 이러한 이유로 소말리아는 대한민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의 외교부에 의해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돼 있다.

1991년 시작된 내전으로 현재까지 집계된 사상자는 30만명(SFG 추정) 또는 50만명 이상(AFP 통신)이며, 실향민 수는 110만명 이상에 달한다. 내전의 나라, 해적의 나라, 가난의 나라 등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가진 소말리아. 대체 이곳은 왜 이렇게 위험한 나라가 됐을까.

◆분쟁의 화근 ‘제멋대로 그어진 국경선’

아프리카에서 내전이 일어나는 원인은 대개 비슷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강대국들이 제멋대로 국경선을 그으면서 종족 간 대립의 불씨를 키워서다.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위치한 소말리아 연방공화국도 마찬가지다.

소말리아는 1500만명에 달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구 85%는 소말리족으로 민족 간의 분쟁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사실 공통의 선조를 둔 6개의 씨족이 있는데, 이들 간에 권력 다툼이 일어나면서 소말리아는 사실상 분열됐고, 수도 모가디슈의 경우 20년 가까이 무정부 상태로 유지되기도 했다. 여전히 수도 외 많은 지역이 무정부 상태로 놓여있다.

소말리아 반도 지도.
소말리아 반도 지도.

◆정부군-이슬람 저항세력 오랜 전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말리아는 1960년에 영국과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했다. 소말리 청년연맹의 셰르마르케가 초대 대통령을 맡았으며, 大소말리아주의를 골자로 하는 외교정책이 수립됐다. 이 정책은 소말리아인 거주지까지 소말리아의 영토에 포함시키려는 정책으로, 에티오피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국경에서 산발적인 전투가 장기간 발생했다. 그러다 1969년 셰르마르케 대통령을 암살하면서 쿠데타로 집권한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장군은 자기 씨족 위주의 정책을 펼치며 22년간 장기집권기에 이른다. 1991년 이후 이슬람 반군들이 독재자 모하메드 사이드 바레 정권을 무너뜨린 뒤 실질적인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일단 알리 마디 무하마드가 임시정부 수반이 됐지만, USC를 이끌고 있던 무하메드 파라 아이디드와의 권력 다툼이 생겼고 여기에 여러 씨족, 군벌들이 얽히면서 결국 본격적인 내전이 벌어지고 유엔이 개입하게 된다.

2000년이 돼서야 소말리아에서는 잠정 정부가 발족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눈을 돌린 사이 테러 단체 알카에다와 관련 있는 ‘이슬람법정동맹’이 소말리아 남부에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뒤늦게 알게 된 미국은 소말리아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인근 국가들도 소말리아 사태에 힘을 보탰다.

32년여간의 내전으로 소말리아에서는 기근과 파괴가 발생, 아프리카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로 전락했다. 지난 2007년 3월 압둘라히 유수프 대통령이 이끄는 과도정부가 수도 모가디슈에 입성하면서 국가 형태를 갖추게 됐다. 2012년에는 잠정 정부에서 소말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체제가 출범했다. 그러나 반군 활동이 여전해 혼란이 지속되는 실정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기독교 박해

혼란을 틈타 알카에다와 관련이 깊은 이슬람 세력이 소말리아 사회에 침투했다. 이때부터 소말리아 내전은 이슬람교와 기독교 간의 충돌로 변해 갔다.

소말리아는 바다 건너편이 이슬람의 본고장 아라비아반도이므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도 이슬람의 영향력이 강하다. 퓨리서치센터에 의하면 소말리아 국민 99.8%가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다.

반면 소말리아에서 개신교는 소수 종교며, 2010년 기준 전체 인구의 0.1% 정도만이 개신교를 믿는다고 한다. 가톨릭도 워낙 세가 작기에 소말리아에는 가톨릭 교구가 오직 모가디슈 한 곳에만 존재한다. 소말리아 전체 인구의 0.1%도 안되는 사람들은 민속 신앙을 믿는다고 한다.

소말리아의 헌법에는 이슬람교를 연방공화국의 국교로 아예 못 박아놓고 있으며, 이슬람교의 샤리아법이 국가 법령에도 도입될 정도로 종교의 입김이 매우 강하다. 또한 ‘샤리아’와 어긋나는 그 어떠한 법도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정부 차원에서 지정해놓고 있다.

소말리아의 많은 지역은 여전히 무정부상태로 남아있고 아프리카연합 평화 유지군과 정부군에 의해서 최근 퇴각한 알 샤바브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샤리아법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자신들의 광분을 표출하는 상황이다.

소말리아의 한 기독교인은 “소말리아의 기독교인은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 단 한 번 누군가를 잘못 믿는다면 문자 그대로 무슬림들에 의해 머리가 날아갈 수 있는 곳이 소말리아”라고 말한 바 있다.

인이알 샤바브에 의해 4명의 기독교인이 체포돼 배교죄로 참수된 적도 있었다. 수도 모가디슈 인근 메르카에서 체포된 이들은 종교적으로 불경스러운 사조를 퍼뜨린다는 이유에서다.

알 샤바브는 이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살려준다고 회유했지만, 개종을 거부하자 즉시 처형했다. 이들 시신을 가족들에게 인도하는 것조차 거부한 알 샤바브는 “소말리아는 알라의 땅이므로 이교도들이 묻힐 땅 같은 건 없기 때문에 시신을 갖다 버렸다”고 강변했다. 이러한 탓에 2023년 기준 소말리아는 기독교 박해 국가 중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