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부산 남포동의 ‘최고령 아파트’ 청풍장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은 지 82년이 됐고 재작년에 E등급을 받았다. ‘즉시 사용 금지’ 하고 보강 또는 철거해야 할 건물이다. 청풍장은 뉴스에 반짝 등장했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주민들은 폭우가 쏟아지면 대피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온다.

안전이 문제 되는 주택이 전국 곳곳에 많이 있다. 노후도가 매우 높은 주택도 많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대응한다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장마 때만 임시방편의 조치를 하고 장마가 지나면 나 몰라라 하는 게 작금의 정부고 지자체다.

안전 참사의 역사를 얼핏 살펴봐도 사전에 많은 징후가 나타난다는 걸 알 수 있다. 작은 징후건 큰 징후건 안전 대책을 세우라는 경고로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책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공직자들로 가득 찬 사회가 우리 사회인 것 같다. 선출된 공직자건 임용된 공직자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위험하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는 아파트가 붕괴된다면 공직자들은 네 탓 하기 바쁠 거다. 우리 사회는 참사가 날 때마다 현장에 있는 사람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해왔다. 안전 참사 사건 판결에서 사법부는 법률을 솜방망이로 전락시키는 행태를 드러냈다.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는 정부와 법률을 만들 수 있는 국회가 구멍이 숭숭 뚫린 법률을 만들어왔다. 사법부보다 정부와 국회의 책임이 큰 이유이다.

처벌하는 법규를 새로 만들거나 기존의 처벌 조항을 강화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안전이 확보될 수밖에 없도록 짜임새 있는 대책을 담은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예산이 투입될 수 있게 하고 안전 인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인력을 뽑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숙련할 수 있는 시설과 장비, 전문 인력 확보가 필수다.

대통령과 서울시장, 부산시장, 충북도지사를 포함한 주요 공직자와 국회의원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100점 만점에 10점에도 못 미친다. 입으로는 안전한 대한민국, 안전한 서울시, 안전한 부산시, 안전한 충청북도를 읊어댄다. 하지만 실행하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부산 ‘최고령’ 아파트를 예로 들어보자. 최악의 등급을 받아 위험성이 매우 높음에도 사유지라는 이유를 들며 어떤 대책도 내지 않고 있다. 사람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음에도 위험을 미리 막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사회가 과연 공정과 상식, 원칙이 통하는 사회일까? 거주자 모두가 안전한 공공주택으로 옮겨 갈 수 있도록 하는 조치부터 취해야 한다.

청풍장은 1941년 건립됐고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 계열 조선도시경영회사의 사원 사택으로 쓰였다는 기록도 있고 한국전쟁 때 국회의원과 정부 주요 인사 숙소로 쓰인 역사도 있으니 보존하는 게 옳다고 본다.

위험성이 높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고령에 질병이 있는 사람,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이다. 주민들은 언제 무슨 일이 닥쳐올지 몰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 산다. 벗어나고 싶지만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책무를 팽개치거나 회피하는 공직자와 국가는 존재 이유가 없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82년 된 ‘최고령 아파트’ 거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주민의 주거대책을 세울 것을 요청한다. 다른 지자체장에게도 같은 부탁을 하고 싶다. 대통령과 국회, 국민의힘과 민주당도 환골탈태해서 국민 생명부터 생각하는 정치를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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