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점 체제인 통신 시장, 요금 비싸져
가구당 통신비 지출, 월평균 13만원
정부, 통신 시장 경쟁 활성화책 마련
알뜰폰·제4이통·중고폰 등 대안 발표
단말기 시장 경쟁 촉진 대책은 없어
참여연대 “제4이통 도입, 실패 재탕”
“보편요금제 도입 및 LTE 더 싸져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브리핑룸에서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브리핑룸에서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손지하 기자] 가구당 통신비 지출이 월평균 13만원을 웃돌면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의 통신비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정부가 과점 체제인 통신 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해 통신비 인하를 유도하는 방책을 내놨지만 실패한 정책을 되풀이하는 데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가구당(1인 가구 이상) 월평균 통신비 지출은 13만 285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12만 1676원) 대비 7.1% 늘어난 규모다. 가계 통신비는 2018년 13만 4107원으로 정점을 찍고 2019년 12만 3006원, 2020년 11만 9775원으로 줄었지만 2021년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2021년 12만 3815원을 거쳐 지난해 12만 8167원으로 뛰었다.

5G(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계 통신비는 월 13만원을 넘기 시작했다. 여기에 스마트폰 가격도 함께 오르면서 가계 통신비 상승세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 4분기 가계 통신비는 13만 4917원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구당 가족 수가 매년 2% 안팎으로 줄어드는 걸 감안할 때 가계 통신비 부담은 매년 5~10%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소득층의 가계 통신비 부담도 더 커지고 있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올해 1분기 가계 통신비는 5만 6482원으로, 전년 동기(4만 9091원) 대비 15.1% 늘었다. 이는 전체 가계 통신비 상승률의 2배를 웃도는 수치다.

통신 시장 구조상 통신비 상승은 예견된 사태다. 통신 시장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의 과점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경제학적으로 봐도 완전 경쟁 시장이랑 거리가 너무 멀어서 통신료가 싸질 수 없다”며 “만약 정부의 제재 없이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조정한다면 시장 논리로 봐도 통신료는 비싸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초부터 통신 업계의 과점 체제를 “기득권과 이권 카르텔”이라고 강하게 질책하면서 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정부는 가계 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다. 알뜰폰 및 5G 중간요금제 확대, 제4 이동통신사 추진, 어르신·청년 요금제 출시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구체적인 대책은 이날 발표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우선 5G 요금제 가입을 강제하는 행위를 막고 이용자 부담을 낮추도록 통신사 약정으로 구매한 단말기 등도 LTE·5G 요금제 중 선택해 가입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이 규정한 추가지원금 한도를 공시지원금의 15%에서 30%로 올리고 폐지 요구가 나오는 단통법 개선 방안도 본격 검토한다. 이와 함께 과기정통부는 중고 휴대전화의 신뢰도 제고와 가격 인하를 위해 중고 휴대전화 시장의 제도권 편입 시도도 병행할 계획이다.

이동통신 3사 로고. (제공: 각 사) ⓒ천지일보DB
이동통신 3사 로고. (제공: 각 사) ⓒ천지일보DB

그러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많다. 몇 년 새 통신비 상승을 견인한 요인이 ‘고가의 스마트폰’이라는 점 때문이다. 통신비는 크게 휴대전화료(단말기 구입 비용)와 인터넷이용료로 나뉜다. 통신사 간 경쟁 촉진도 중요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진 상황이 통신비 인하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단말기 시장은 LG전자의 철수 이후 삼성전자와 애플 두 곳으로 양분돼 더욱 심한 과점 체제가 됐다. 이번 방안에 중고폰 활성화 대책도 들어가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아울러 이미 과점 체제가 완성된 통신 시장에 제4 이동통신을 유치하는 게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가 신규 할당을 준비하고 있는 5G 주파수 28㎓ 대역에는 큰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참여연대는 이날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향성부터 틀렸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정부의 통신 시장 경쟁 활성화 방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참여연대는 “정부의 오랜 경쟁 촉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통 3사의 독과점 체제는 20년간 더욱 공고해졌고 이로 인해 이통사의 영업이익은 역대급 성장세를 보인 반면 전 국민의 가계통신비 부담은 계속해서 증가해 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아무런 실효성 없는 경쟁 촉진 방안을 전면 재검토하고 통신 산업의 공공성·안정성 확보, 기울어진 운동장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보편요금제 도입 ▲LTE 요금 반값으로 낮추기 ▲알뜰폰 이통 3사 자회사 퇴출 ▲원가 수준의 알뜰폰 도매대가 제공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제4 이동통신 도입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례 실패한 대책의 재탕일 뿐”이라며 “허언에 불과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이통 3사는 최근 저마다 ‘탈통신’을 외치며 이동통신 영역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으로 다른 산업 영역으로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신규 통신 사업자의 진입을 지원한다고 한들 수십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을 감수하고 뛰어들 신규 사업자도 없을 뿐더러 장치산업의 특성상 발생하는 선점효과를 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실질적인 인하 효과를 누리기 위해선 과기정통부의 엄격한 품질 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진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5G의 경우 요금제 대비 품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다”며 “정부는 품질 평가를 엄격하게 하고 통신사들은 투자를 통해 요금에 맞는 고품질의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든지, 요금제 단가를 인하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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