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살해·유기 사건 터지자
2008년 이후 뒤늦게 ‘법제화’
병원 밖 출생 아동 ‘1556명’
“보호출산제 조속 추진돼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유령 아동’이 없도록 ‘출생통보제’가 내년에 도입된다. 감사원은 최근 7년간 2236명의 영유아가 출생신고가 안 된 것을 확인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이 드러나는 등 영아 살해·유기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뒤늦게 법제화됐다. 하지만 출생통보제 이후 ‘병원 외 출산’의 수가 더 늘어날 수 있는 만큼 ‘보호출산제’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유령 영아’ 400건 수사 중… 15명 사망

5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따르면 이른바 ‘유령 영아’ 사건에 대한 접수·수사 건수는 3일 193건에서, 4일 420건(오후 2시 기준)으로 대폭 늘어났다. 경찰은 접수‧수사 건수가 계속 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가운데 400건에 대해 수사나 입건 전 조사 등을 벌이고 있다. 지역별로는 ▲경기남부경찰청 94건 ▲서울·대전청 각 38건 ▲경남청 33건 ▲인천·충남청 각 29건 ▲경북청 23건 ▲전남청 21건 ▲부산청 19건 ▲경기북부청·광주·충북청 각 14건 ▲대구청 10건 ▲전북청 9건 ▲강원청 8건 ▲울산청 7건 등이다.

접수된 출생 미신고 아동 가운데 15명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8명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를 발견해 경기남부경찰청 등이 수사 중이다. 5명은 혐의없음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2명은 친모에 의해 살해된 정황이 확인돼 검찰에 송치했다. 소재 파악이 안 된 353명은 수사를 통해 생사를 확인하고 있다.

경찰이 4일 오후 경남 거제시 고현동 신현제1교 주변에서 ‘거제 영아 살해 유기 사건’과 관련해 영아 시신을 수색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경찰이 4일 오후 경남 거제시 고현동 신현제1교 주변에서 ‘거제 영아 살해 유기 사건’과 관련해 영아 시신을 수색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의료기관→심평원→지자체장 순 통보

국회는 지난달 30일 본회의를 열어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공포일로부터 1년 후 시행된다.

출생통보제 법안이 2008년 처음 발의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도화가 너무 늦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현재까지 20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자동 폐기되거나 진척이 없었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자체에 통보하고,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동은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다.

의료기관장은 해당 정보를 아동 출생일로부터 14일 안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통보하고, 심평원은 이를 산모 주소지가 있는 지자체장(시·읍·면장)에게 곧바로 통보한다. 지자체장은 아동이 출생 후 1개월 안에 출생신고 됐는지를 확인하고, 미신고 상태라면 신고의무자(부모)에게 7일 안에 신고하라고 통지해야 한다. 이 기간에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거나 부모를 특정할 수 없다면 지자체장이 법원 허가를 받아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유기 범죄의 상당수가 미성년자나 미혼모가 낳은 경우인데 출생통보제가 시행될 경우 이들이 일부러 병원을 가지 않고 몰래 낳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나홀로 출산’ 법의 사각지대 여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한국 출생 아동 30만 2676명 중 1556명(0.5%)이 병원 밖에서 태어났다. 이는 ‘병원 밖’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아직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출생통보제가 보편화될 경우 외부에 출산을 알리기 꺼리는 임산부들이 자택 등 병원 밖에서 아이를 낳을 가능성 있다.

이를 위해 원치 않은 임신 또는 준비되지 않은 채 임신을 한 미혼모나 미성년 임산부 등이 익명으로 출산을 원할 경우 신원을 숨기고 아이를 낳더라도 정부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맡는 제도가 ‘보호출산제’다. 당정이 출생통보제와 함께 도입하겠다고 밝혔던 ‘보호출산제’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기일 보건복지부(복지부) 1차관은 5일 서울 중구 소재 서울스퀘어에서 ‘출생 미등록 아동 보호체계 개선 추진단’ 1차 회의를 주재하고 “보호출산제가 조속히 입법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최대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년 후 보호출산제와 출생통보제가 함께 시행될 수 있도록 예산을 미리 확보하고 관련 부처와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소속 여성의원 19명은 전날(4일) 오전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보호출산은 임신 및 출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아기의 생명권과 알권리를 조화롭게 보호하는 제도”라며 신속한 보호출산제 도입을 촉구했다.

이들은 “모든 임신과 출산은 축복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현재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끔찍한 범죄 보도가 충격을 주고 있지만, 추적조차 불가능한 병원 밖 출산은 생사조차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보호출산법안 통과 관련 국민의힘 여성의원 기자회견에서 김영선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보호출산법안 통과 관련 국민의힘 여성의원 기자회견에서 김영선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미혼모 손가락질… 아이 유기 결과 초래”

미혼모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미혼모 보호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미숙 한국아동복지학회 감사는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하다. 적법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녀를 출산할 경우 편견을 갖는 것에 대해 바뀌어야 한다”며 “미혼모가 출산할 경우 손가락질하면 숨게 되고 아이를 유기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김 감사는 “독일은 1300곳의 임신갈등지원센터를 운영해 상담과 지원을 해주고, 프랑스는 2006년 혼외 출산 구별 규정을 없애 아기만 있으면 각종 수당 혜택을 준다”며 “우리나라는 미혼모 상담을 위한 가족센터가 전국 244곳에 불과하다. 정부가 나홀로 출산하는 위기 임산부에 대한 지원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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