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 높은 산과 계곡으로 떠나
더위 이기는 8가지 방법 전해져
시원한 과일 먹거나 독서도 즐겨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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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낮 최고 기온이 35도에 오르는 등 전국 곳곳에 ‘폭염경보’가 발효됐다. 7월 초 녹아내릴 듯한 폭염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다. 이 같은 ‘역대급 폭염’ 소식에 에어컨 등 냉방 장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피서객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바다나 산으로 하나둘씩 떠나고 있다.

‘오뉴월(양력 6~8월) 더위에 염소 뿔이 물러 빠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한낮 더위는 대단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냉방장치 하나 없던 조선시대에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슬기롭게 한여름을 보냈을까. 문헌 속에 남겨진 선조들의 지혜를 알아봤다.

◆시원한 그늘 찾아 피서 떠나 

‘피서(避暑)’는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처럼 선비들도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 산으로 피서를 떠났다. 조선 전기 학자 조식이 쓴 기행문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보면 선비들은 백두산, 한라산, 금강산, 오대산, 속리산, 가야산 등 명성이 높은 산을 찾았다. 산행은 더위를 이기고 스승과 제자들이 화합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피서지는 북악산, 인왕산, 남산 등이었다. 특히 인왕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수성동 계곡은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 그려질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소나무 사이로 흐르는 맑은 계곡과 물소리는 더위를 날릴 만큼 시원함을 더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대표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소서팔사(消暑八事)’ 시를 통해 더운 여름을 이기는 8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여기에는 활쏘기, 그네타기, 투호놀이, 바둑 두기, 연꽃 구경하기, 매미 소리 듣기 등이 포함돼 있다.

계곡에서 즐기는 ‘탁족’도 유행했다. ‘동국세시기’의 ‘유월조(六月條)’에 보면 “서울 풍속에는 남산과 북악 계곡물에 발 담그기를 하는 놀이(濯足之遊)가 있다”고 했다.

조선 중기 화가 이경윤(1545~1611)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선비가 무성한 나무 그늘이 있는 냇가 바위에 걸터앉아 탁족을 즐기는 모습이 잘 담겨 있다. 선비는 더위에 옷깃을 풀어헤쳤고, 옆에는 시종을 드는 아이가 술병을 들고 서 있다.

◆왕들의 ‘소확행’ 피서법

조선시대 왕들은 어떻게 더위를 이겨냈을까. 왕이니까 거창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대부분이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소소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시대 왕들은 쉽게 궁밖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경복궁의 경회루나 창덕궁 후원 등을 자주 찾았다. 이곳에서 왕들은 시원한 수박과 참외를 즐겼고 얼음물에 꿀과 한약을 섞은 ‘제호탕’을 즐겨 마시며 더위를 피했다.

성종(조선 9대 왕)은 어린 시절 더위를 먹어 기절한 적이 있을 정도로 더위로 고생했다. 이에 그는 더운 계절 ‘수반(水飯)’을 즐겨 먹었다. 쉽게 말해 찬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었다. 영조(조선 21대 왕)는 고소한 맛이 나는 ‘미숫가루’를 여름 건강식으로 즐겼다.

정조(조선 22대 왕)는 독서로 더위를 이겨냈다. 정조는 “더위를 물리치는 데는 책 읽기만큼 최고의 방법은 없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 몸이 치우치지 않고 마음의 중심이 서고, 바깥 더운 기운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치였다.

연산군(조선 10대 왕)은 소박한 피서를 즐긴 다른 왕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당시에 매우 귀했던 얼음을 대형 놋쇠 쟁반에 가득 담아 동서남북 사방에 놓고 마치 에어컨처럼 사용했다.

대다수의 백성은 어떻게 한여름을 견뎌냈을까. 우선 꼭 필요한 것이 부채였고, 통풍이 잘되는 모시옷을 착용했다. 더운 밤에는 잠을 잘 때 대나무로 만든 죽부인을 옆에 놓았다.

한여름에 치마 속에 속옷, 속바지를 챙겨 입어야 하는 여인들에게도 한여름을 고역이었다.이에 여인들은 음력 6월 15일인 유두(流頭)날 개울가에 모여 머리를 감고 멱을 하며 놀았다고 한다. 최남선의 ‘조선상식’ 풍속편에는 여인들의 물맞이 장소로 서울의 정릉계곡, 광주의 무등산 물통폭포, 제주도의 성판봉 폭포 등을 적합한 장소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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