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추념식 전국서 거행
50년 넘게 참배한 추모객도
윤 대통령 등 7천여명 참석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참배객이 전사자의 묘에 추모글을 남기고 있다. ⓒ천지일보 2023.06.0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참배객이 전사자의 묘에 추모글을 남기고 있다. ⓒ천지일보 2023.06.05.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저는 시간만 있으면 들려서 아버지한테 인사드려요. 오늘은 몸이 좀 아파서 다음에 갈까 하다가 특별한 날이라 왔어요.”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동문 부부위패판 앞에서 만난 박순자(86, 여, 서울 강서구)씨가 관상동맥협착증으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147번 위패를 어루만지던 박씨는 아버지 이야기를 털어놨다.

박씨의 아버지는 3.1운동 유공자다.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난 박씨의 아버지는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에 가서 배워야 한다’며 유학을 떠났다. 집안 어른들은 남자 혼자 외부로 보내면 딴짓하기 쉽다고 여겨 매파의 중매로 서둘러 혼사를 치렀다. 박씨는 그렇게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이후 박씨의 아버지는 일본 최북단 광산에서 조선인들이 일본사람에게 천대받으며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공부도 중요하지만 우선 나라가 안정돼야 한다’고 결심했다. 박씨의 아버지는 항일운동을 벌이다 목숨을 잃었다. 박씨는 아버지만 잃은 게 아니었다. 박씨는 “나를 가운데로 5남매를 두셨는데 전쟁통에 3남매를 잃고 오빠와 나 둘만 남았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현충일인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한 아이가 부모와 함께 외할아버지 묘에 참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6.0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현충일인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한 아이가 부모와 함께 외할아버지 묘에 참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6.06.

이날 현충일을 맞아 저마다의 아픔을 가진 참배객과 시민들이 현충원을 찾았다. 태극기를 몸에 두른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 방문객도 눈에 띄었다. 한 부모는 “총이나 폭탄에 맞아서 돌아가신 분들”이라고 자녀에게 설명했다. 국가원수묘역과 부부위패판, 호국 형제의 묘 등 곳곳에서 참배가 이어지고 있었다. 기독교식 예배를 드리거나 과일, 떡 등을 묘비에 올린 뒤 식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제30묘역에서 만난 배병도(72, 남, 대구광역시)씨 부부는 매년 현충일에 참배하러 온 지 40년이 넘었다. 배씨는 결혼 전 어머니와 함께 온 세월까지 합치면 50년이 넘는다. 작년에는 사위, 아들, 딸이 모두 함께 왔었지만 올해는 여의찮았다. 배씨의 아내는 “자식 대는 이제 안 온다고 봐야 한다”며 “우리 선에서 끝내야지 싶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배씨는 “대구에서 늘(현충일마다) 오는데 집사람은 맨날 돈 주고 기차표를 끊어야 한다”며 “현충일 하루만큼은 두 사람이 올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진수(가명, 67, 남, 서울 동대문구)씨는 6.25 참전용사인 아버지를 참배한 뒤 30묘역에서 동료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김씨는 1980년대에 함께 15사단에서 훈련받던 전우를 지뢰 사고로 잃었다. 김씨는 “(동기와) 앞날에 대해 서로 의논하며 마음과 뜻이 맞았다”며 “그 녀석은 참 좋아서 잊지 못할 친구”라고 회상했다. 김씨는 “초장에는 몇 년 왔다가 사회생활이 바쁘다 보니 못 왔었다”며 “아버지를 (현충원에) 모신 뒤부터 살짝살짝 오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을 마친 뒤 대간첩 작전 전사자 묘역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을 마친 뒤 대간첩 작전 전사자 묘역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전국 곳곳서 현충일 추념식

이날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이 전국에서 일제히 거행됐다. 국가보훈부는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당신의 희생을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추념식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국가유공자 및 유족, 정부 주요 인사, 각계 대표 등 7000여명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독립과 건국에 헌신하신 분들, 공산 전체주의 세력에 맞서 자유를 지켜내신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다”며 “이분들은 국가의 영웅”이라고 치하했다.

대전시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위대한 헌신, 영원히 가슴에’라는 주제로 추념식을 했다. 부산시는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추념식을 열었다. 박형준 부산시장, 국가유공자 및 유족, 주요 기관장 등 500여명이 참석해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렸다. 충남도는 충남보훈공원에서 김태흠 충남지사, 보훈단체 관계자 등 500여명과 함께 추념식을 거행했다.

이외에도 국립영천호국원, 울산대공원 현충탑, 충북 청주 충혼탑 광장, 인천 수봉공원 현충탑 등에서 추념식이 열렸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현충일인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시민들이 사이렌 소리에 묵념하고 있다. 이날 전국적으로 오전 10시부터 1분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현충일 사이렌’이 울렸다. ⓒ천지일보 2023.06.0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현충일인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시민들이 사이렌 소리에 묵념하고 있다. 이날 전국적으로 오전 10시부터 1분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현충일 사이렌’이 울렸다. ⓒ천지일보 2023.06.06.

◆“나라, 한마음으로 뭉쳐 잘됐으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추념식이 마친 뒤 이경수 예비역 원사(95)가 구부러진 허리로 지팡이를 짚고 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 달린 배지와 훈장은 빛나고 있었다. 이 원사는 1100명이 목숨을 잃은 개화산 전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다. 그는 “문산, 개성, 봉일천, 개화산 다 내가 전쟁한 곳”이라고 말했다.

행사장 바깥 펜스에서 추념식을 지켜보던 송병욱(77, 남, 경기도 안양)씨는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오늘 같은 날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왔다”고 말했다. 송씨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의 마음을 기려야 하는데 그걸 못 해줘서 안타깝다”며 눈물을 흘렸다.

송씨는 “서로 합의해서 좋은 걸 찾아서 해야 하는데 무조건 반대만 하고 대화할 줄 모르는 세상이 됐다”며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나라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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