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내용에 일부 시민들 불안
뒤늦게 경계경보 해제에 허탈
정확한 상황 파악 필요 지적도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3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 ‘우주 발사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5.3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3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 ‘우주 발사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5.31.

[천지일보=전국특별취재팀] “문자를 받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나 생각했어요. 전쟁 나면 가족을 못 만날 텐데 오발송이라고 하니까 안심됐지만 불안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네요.”

김숙희(가명, 50대, 여, 서울 중량구 신내동)씨가 경계태세 오발송 소식에 이같이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울시는 31일 오전 6시 35분 경보 사이렌을 울리며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이어 6시 41분 위급 재난 문자를 보내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란다’고 알렸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오전 7시 3분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린다’고 정정했다. 이후 서울시는 7시 25분 위급 재난 문자에서 안전 재난 문자로 변경해 ‘북한 미사일 발사로 인해 위급 안내 문자가 발송되었습니다. 서울시 전 지역 경계경보 해제됐음을 알려드린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일상으로 복귀하시기 바란다’고 발송했다.

이러한 오발송 헤프닝으로 인해 서울 시민들은 1시간여 동안 불안에 떨어야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김시우(가명, 60대, 서울 강서구 가양동)씨는 “경보가 울려 여기저기 확인하다 핸드폰을 보고 알았다”며 “업무도 있고 비상 상황을 대비해 대처도 해야 하는데 물어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이어 “오발송이어서 다행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민방위 훈련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는 거였다면 그 자리에서 끝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에서만 경계경보… 지역은 ‘잠잠’

이번 경계경보 오발송 헤프닝은 서울에서만 일어났다. 경기도, 인천 등 수도권, 강원도 등의 지역에서는 뉴스 등을 통해 뒤늦게 소식을 접했다. 일부 시민들은 서울 시민들처럼 불안해하기도 했지만 평소처럼 생활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광주, 전남의 70~80대 어르신들은 “아침 뉴스를 보는데 전쟁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며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황당하다”고 말했다. 특히 6.25 전쟁을 겪었거나 월남전 파병 세대들은 “전쟁에 대한 공포가 밀려와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고 호소했다.

강원도 원주 우산동에 사는 이성호(가명, 60)씨는 “이거 뭐 툭하면 쏴대니 불안해서 어디 살겠나”며 “이놈들이 하늘에다가 무엇을 뿌릴지 모르니 식구 수 대로 방독면을 사 놓아야겠다”고 하소연했다. 또 “하루속히 남북이 통일돼야 조용할 텐데,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권력과 야욕을 버리면 평화 통일 문제도 아주 순순히 풀리지 않겠냐”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구 시민들도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김미화(가명, 60, 여, 대구 달서구)씨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거라는 소리는 들었다. 오늘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오발송이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오늘 미사일 발사를 안 한 것은 다행이고, 오발송이었다면 더 다행이다. 하지만 정부도 국민이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직 비상식량 등을 사재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켜보고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 시민들도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고 했다. 서경서(청주시 용암동)씨는 “청주시민으로서 주변에 공군사관학교와 비행장이 있어서 불안하다”며 “전쟁이 나면 외국길이 막히니 제주도라도 가고 싶은 심정일 것 같다”고 전했다.

전북 전주에 사는 시민들은 구체적인 장소 언급도 없이 대피하라고만 한 문자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김동희(60대, 여,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씨는 “대피하라고 문자가 왔는데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올려놓은 글을 봤다”며 “평상시에 분단국이면서 너무 강대강 대치 국면으로 나갔기 때문에 이번에 로켓을 쐈다는 소식에 놀라게 된 것 같다”고 말하며 문자 받은 사람의 심정에 공감했다.

우리 군이 31일 오전 8시 5분 어청도 서방 200여㎞ 해상에서 ‘북 주장 우주발사체’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를 식별해 인양 중이다. (출처: 뉴시스)
우리 군이 31일 오전 8시 5분 어청도 서방 200여㎞ 해상에서 ‘북 주장 우주발사체’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를 식별해 인양 중이다. (출처: 뉴시스)

◆안내 없이 경계경보 발령만… 시민들 비판

갑작스러운 경계경보 발령에 대해 비판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충북 청주시에서 병원 근무를 하고 있는 김형경(20대)씨는 “뉴스를 보고 마음이 철렁 내려앉은 기분이였다”며 “우리나라도 전쟁이 일어나는 건가, 어디로 가야 하지, 대한민국도 안전하지 않구나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그러면서 “재난 문자를 보낼 때 정확하게 상황 파악을 해서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 시민들은 그 문자 하나로 삶과 죽음이 오가는 심정이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김씨는 정부가 오발송으로 시민들이 동요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이없는 위급문자 오발송에 대해 고은해(35, 경기 평택시 오성면)씨는 “재난 문자까지 보내고는 대통령은 NSC 참석도 안 한다고 한다.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는 것 같다”며 “또 뭘 덮으려고 이러는 것(위급재난문자 오발송) 아닌지 의심이 간다. 오늘 후쿠시마 오염수 발표하고 노조 분들 큰 시위 한다던데 시선 돌리기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고 씁쓸해했다.

양치기 소년을 언급하며 지적하는 시민도 있었다.

전남 여수에서 새벽 4시에 출근한 조태양(가명, 남, 전남 여수시 문수동)씨는 “라디오를 통해 들었는데 이건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진짜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믿을 수 있겠나”고 꼬집었다.

체육교사 박정아(가명, 42, 여, 전남 여수시 신기동)씨도 “인터넷 뉴스를 통해 들었는데 북한 도발이 진짠가 의심이 됐다”고 답답해했다.

김희천(43. 남, 전남 목포시)씨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실제 상황이 아닌 오발로 밝혀졌지만, 사람들의 신뢰도는 떨어졌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재난 문자를 넘어 정부에 대한 불신까지 생길 것 같다”며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계경보 오발송과 관련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31일 시청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새벽 북한 우주발사체 관련 서울시 경계경보 문자로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며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상황에서 행정안전부의 경보 발령을 전파받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민방위경보통제소 담당자가 상황의 긴박성을 고려해 경계경보 문자를 발송했다”고 해명했다.

(김동현, 김미정, 노희주, 류지민, 송연숙, 송해인, 이미애, 이봉화, 이현복, 천성현, 홍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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