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2023년 6월 방탄소년단의 10주년 데뷔를 맞아 한국조폐공사가 금으로 만든 기념 메달 1만 개를 선보였다. 사실상 이 메달은 국내보다는 해외를 겨냥하고 있었다. 해외 지정 딜러를 통해 글로벌 마켓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게 했다. 방탄소년단 팬들이 돈을 더 주고도 산다고 할 수 있다. 기념우표도 우정공사가 발행했다. 많은 팬이 기념일을 맞아 한국을 방문하면서 초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미 서울 시내 호텔에 해외 관광객 예약 문의가 쇄도하고 게스트하우스가 예약 만실인데도 문의가 이어졌던 것은 방탄소년단 때문이다.

지난 4월 대만에서 블랙핑크 암표가 1700만원에 돌자, 당국은 50배의 벌금을 매기는 조처를 했다. 블랙핑크 콘서트의 입장권 가격은 8800 대만 달러(약 38만원)이지만, 암표는 최고 45배인 40만 대만 달러(약 1729만원)에 거래됐다. 이는 블랙핑크라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기 때문에 더욱 구매가치를 높게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팬심 관점에서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일종의 프리미엄 효과가 다른 상품에도 발생하고 있다.

2010년 태국 네이션TV의 아나운서 파타라폰씨는 “태국에서는 ‘한국 스타일’이라고 하면 물건이 잘 팔린다”라고 했다. 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 됐다. 지난 3월 6일 BBC는 관련 기사에서 “몇 년간 해외 시장에서 한류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수출이 크게 늘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언급 했다. 즉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K-팝, K-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 수출입을 반영한 국제수지가 역대 최대인 1조 6000억원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문화 할인율과 상대적인 개념으로 문화 할증률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문화 할인율은 1988년 한 논문에서 호킨슨(Hoskins)과 마이러스(Mirus)가 주장한 개념으로 한 문화권의 상품과 콘텐츠가 다른 문화권으로 진출했을 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낮게 평가받는 것을 말한다. 이럴 때 판매자는 할인행사를 하거나 좀 다른 것과 같이 끼워 팔기를 해야 한다. 예컨대 원더걸스는 2009년 6월 27일 밤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로즈가든에서 미국의 아이돌 그룹 ‘조나스 브라더스’ 콘서트의 개막 무대에 출연했다. 또 2010년 2월 14일 미국 LA 할리우드 팔라디움에서 펼쳐진 저스틴 비버의 콘서트에서 오프닝 공연 가수로 참여했다. 단독 콘서트를 열 수 없으므로 미국 가수 콘서트에 끼워 넣은 셈이다.

대개 문화 할인율을 극복하기 위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질만한 포맷을 추구한다. 대표적인 것이 넌버벌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다. 되도록 언어적 표현을 자제하고 몸으로 메시지를 보여준다. 몸짓뿐만 아니라 음악이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7년 호암아트홀에서 초연된 난타(Nanta)라고 할 수 있다. 타악기 연주와 요리 퍼포먼스를 연결시켜 세계적으로 흥행했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남아 있다. 그 뒤 ‘점프(Jump)’는 무술 퍼포먼스를 활용해 세계적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되도록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당장에 눈길을 끌 수 있지만, 여운의 지속성은 덜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이나 ‘오징어 게임’의 흥행은 더욱 이를 말해준다. 정말 좋아하게 되는 점이 있다면 스스로 번역을 하거나 공부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더구나 플랫폼 환경은 이제 자막해설을 전천후로 제공한다.

문화 할인율을 극복하는 방안은 이제 수동적인 태도에 한정되고 있다. 오히려 문화 할증률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할증은 택시 요금에서 익숙하다. 특히 심야 할증이 대표적이다. 이는 택시를 찾는 사람은 많은데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 시간대이다. 문화 할증률은 특정 문화 상품이나 콘텐츠에 대해서 선호도가 높아져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것이다. 정상 가격보다 높은 암표나 불법 사이트를 통해 시청하는 행태를 포함한다. 또한 단순히 문화 아이콘이 출연한 영화나 광고만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공간이나 사물도 높은 가치를 갖는다. 아이돌 그룹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거나 드라마 인기 때문에 세트장 등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나타난다. 나아가 한국산 제품이라는 이유로 더욱 잘 팔리는 현상도 여기에 속한다. 우리가 더욱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이제 문화 할인율 극복이 아니라 문화 할증률 배가라는 점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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