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서해의 검푸른 파도를 가르며 다시 북한 주민 일가족 9명이 대한민국으로 탈북해 왔다. 그들은 평소 한국의 한류를 많이 접한 데다, 식량난 등으로 먹고 사는 일이 너무 힘들어 대한민국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등장 후 북한 인권에 대해 보여준 깊은 관심에 감명을 받아 어렵지 않게 결단을 내렸다고 토로했다. 그만큼 한국의 대북정책은 북한 주민들에게 커다란 레버리지가 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난 1997년 1월 청진의 의과대학 의사였던 김만철씨가 일가족 11명을 이끌고 탈북해 온 역사를 우리 모두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청진을 떠나 일본 쓰루가항에 도착한 후 비행기로 대만으로 날아갔다. 처음 행선지를 한국으로 정하지 않았고, 북한의 전후 세대인 처남 두 명 등이 한국행을 결사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정부의 설득으로 그들은 타이완에서 마음을 돌려 한국행을 정했으며 곧 항공기로 김포공항에 안착했다. 그때만 해도 가족끼리도 북한 체제의 배반을 놓고 갈등이 존재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북한 주민들의 사상교육 효과와 우유부단할 수밖에 없는 고뇌에 찬 결심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완전히 달라졌다. 북한 정권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충성은 고갈 직전이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 사망 후 시작된 고난의 행군 뒤 이어진 대량탈북은 탈북역사의 새로운 분수령이었다. 그 뒤 탈북 도미노는 탈북민 3만 4000명 시대를 열었다. 이 숫자는 한국의 강원도 인제군 인구보다 무려 2000명이나 더 많은 숫자다. 만약에 한국에서 북한으로 이런 숫자가 넘어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물론 그런 일은 애당초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지난 1974년 북한의 국력이 우리보다 앞서 있을 때는 월남자보다 월북자가 훨씬 많았다.

근래 육로 탈북은 많이 힘들어졌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한국 등으로 자유를 찾아오는 탈북민들의 행로는 한층 험난한 ‘가시밭길’이 됐다. 탈북 과정에 드는 비용이 많게는 10배까지 증가한 데다, 중국 공안 당국의 감시망이 한층 강화돼 은신과 이동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북·중 국경이 재개방될 경우 중국에 억류된 탈북민의 송환 우려도 나온다. 18일 탈북민 구출 활동을 전개하는 인권활동가들에 따르면 탈북민 1인당 구출에 소요되는 비용은 코로나19 발생 이전 한화 200만원 수준이었지만, 현재 1000만원에서 2000만원 수준으로 폭등했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으로부터 1명의 탈북민을 데려오는 가격은 상상이 안 가는 정도로 치솟았다.

한 북한 인권 운동가는 “중국 당국이 현장에서 활동하는 브로커들을 한층 심하게 색출하고 있고, 동남아시아로 내려가도 코로나19 이전보다 훨씬 많은 인력이 국경에 배치돼 있다”며 “지난달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이동하다 잡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북·중 국경을 넘어오는 것 자체가 수월하지 않은 상황인 데다, 중국 내에서도 당국이 인공지능(AI)과 안면인식 기술을 적용한 CCTV를 활용해 감시를 강화하다 보니 이동이 전보다 더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국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브로커 등을 통해 북한 내 친인척을 데려오는 탈북 방식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한국행을 시도하다가 검거되는 탈북민의 숫자도 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의소리(VOA)는 “지난 한 달 새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기 위해 동남아 국가로 향하던 탈북민이 적어도 4팀, 20여명이 중국 공안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악조건에서 이번에 두 가족 9명이 해상탈북을 결단했다. 육로를 막으면 해상으로 간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라고 할까.

우리 정부는 이제 탈북민 수용정책을 혁신적으로 개선해 북한 정권 해체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행만 유도할 것이 아니라 제3국 등지에 수용시설을 건설해 그곳으로 유인하는 담대한 탈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통일부는 되지도 않을 대화의 썩은 밧줄을 붙잡고 우왕좌왕하지 말고 탈북민 수용정책의 혁신적 전환으로 김정은 정권 해체를 촉진하고 거기서 통일의 출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탈북 수요는 충분하고 그들을 안정시킬 교육시설도 완벽하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해 놓은 수용시설이 충분한데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는 평양 정권에 굴종하느라 이 모두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탈북민 수용정책도 정상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본다. 김정은 정권이 사라지면 바로 그날이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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