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안 및 기포감정․비파괴 검사 실시

고베과학감정원, 진품 분청사기 고증

진품서 볼 수 있는 파포현상 나타나

일본 도쿄에서 돌아온 '조선초기분청사기인화문대호' (제공: 고베과학감정원) ⓒ천지일보 2023.05.18.
일본 도쿄에서 돌아온 '조선초기분청사기인화문대호' (제공: 고베과학감정원) ⓒ천지일보 2023.05.18.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일본 도쿄에서 한국의 도자기 소장가에 의해 한국으로 돌아온 ‘조선초기인화문분청사기대호’가 광주 무등산 충효동 요지(사적 141호)에서 번조된 자기로 규명됐다.

서울 소재 고베과학감정원(원장 정세운)은 최근 진품으로 확인된 조선초기인화문분청사기 대호를 공개했다. 높이 35㎝, 구연부 19㎝, 밑면지름 17.5㎝ 크기로 연꽃과 국화문양이 전면에 꽉 찬 분청자기로 조선 전기 번조된 문화재급 유물이다.

이 자기는 고미술전문가인 한국역사유적연구원 이재준 고문의 육안감정 및 기포감정과 고베과학감정원의 비파괴 검사로 현대물질이 섞이지 않은 ‘조선초기인화문분청사기대호’로 고증됐다.

광주 충효동 무등산분청사기전시실에 복원 전시돼 있는 분청사기 항아리 (제공: 이재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고문) ⓒ천지일보 2023.05.18.
광주 충효동 무등산분청사기전시실에 복원 전시돼 있는 분청사기 항아리 (제공: 이재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고문) ⓒ천지일보 2023.05.18.

이재준 고문은 “이 자기를 무등산 분청사기 가마 번조로 규명할 수 있었던 것은 똑같은 문양과 기형을 지닌 분청사기 파편이 발굴과정에서 수습 복원돼 충효동 분청사기 전시실에 전시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개된 ‘조선초기인화문분청사기대호’ 구연부 (제공: 고베과학감정원) ⓒ천지일보 2023.05.18.
공개된 ‘조선초기인화문분청사기대호’ 구연부 (제공: 고베과학감정원) ⓒ천지일보 2023.05.18.
분청사기대호 하부 중판 앙련문(仰蓮紋) (제공: 고베과학감정원) ⓒ천지일보 2023.05.18.
분청사기대호 하부 중판 앙련문(仰蓮紋) (제공: 고베과학감정원) ⓒ천지일보 2023.05.18.
공개된 분청사기대회 밑면 상태 (제공: 고베과학감정원) ⓒ천지일보 2023.05.18.
공개된 분청사기대회 밑면 상태 (제공: 고베과학감정원) ⓒ천지일보 2023.05.18.
일본서 돌아온 분청사기 상단부분 ⓒ천지일보 2023.05.22.
일본서 돌아온 분청사기 상단부분 ⓒ천지일보 2023.05.22.

특히 이 고문은 “일본에서 돌아온 분청사기대호는 발굴된 자기가 아닌 전세된 것”이라며 “찌든 때가 묻어 색깔이 진한 검은 녹색을 띠고 있으며 전면에 산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청사기대호는 구연부를 중심으로 연판문과 파상문을 두르고 가운데는 3조의 선문으로 구획, 가운데 국화문양을 조밀하게 배치했다. 또 하부에는 백상감으로 끝이 뾰족한 중판의 앙련문(仰蓮紋)을 돌렸다. 이는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문양이 계승된 것이다. 조선 초기에 번조된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의 문양 수법이 남아있는 것이 상례다.  

‘덕녕부(德寧府)' 명(銘)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3.05.18.
‘덕녕부(德寧府)' 명(銘)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천지일보 2023.05.18.

‘덕녕부(德寧府)' 명(銘)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을 보면 이 자기는 초콜릿 태토에 문양을 시문, 백토를 채워 넣었으며 그 위에 청자유약을 시유한 것으로 고려청자의 기법이 남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 초기 분청사기에서 청자유약을 바르고 색깔이 어둔 회청색을 띤 자기가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이 고문은 설명했다.

고 자기임을 증명하는 분청사기의 빙렬선과 사포(死泡) 상태 (제공: 이재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고문) ⓒ천지일보 2023.05.18.
고 자기임을 증명하는 분청사기의 빙렬선과 사포(死泡) 상태 (제공: 이재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고문) ⓒ천지일보 2023.05.18.
분청사기 백토상감에 나타난 파포(破泡). 진품 자기에서만 보이는 현상이다. (제공: 이재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고문) ⓒ천지일보 2023.05.18.
분청사기 백토상감에 나타난 파포(破泡). 진품 자기에서만 보이는 현상이다. (제공: 이재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고문) ⓒ천지일보 2023.05.18.

고베과학감정원 정세운 원장은 “분청사기를 50배 확대경으로 검측한 결과 빙렬선에 걸친 많은 사포(死泡)가 확인되고 있다. 특히 백토를 상감한 곳에서 파포(破泡)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는 진품 자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 원장은 “이 자기는 한눈에 조선 초기 분청자기로 판단된다”며 “귀중하게 보존돼야할 문화유산”이라고 부연했다.

고베과학감정원은 이밖에도 해외에서 여러 점의 중요문화재 환수작업을 추진한 바 있으며 우리 문화재 올바른 가치를 위해 문화재지정신청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고베과학감정원이 해외에서 환수해온 자기 가운데는 문화재급 ‘고려상감청자동자문매병’ ‘고려상감청자모란문매병’ 등이 있으며 이를 육안 감정이 아닌 과학감정을 병행, 진품임을 확인하고 있다.

특히 고베과학감정원은 모든 문화재를 감정할 경우 구술이나 안목감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연구논문과 전문가의 학술토론을 통해 진위를 판단하고 있다.

광주 충효동 요지 전경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18.
광주 충효동 요지 전경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18.

◆ 사적141호 충효동 가마터

광주 충효동 가마터는 ‘세종실록지리지’ 무진군조(茂珍郡條)의 ‘자기소 1 재군동 이점(磁器所 一 在郡東 梨岾)’이라는 기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 광산현 토산조의 ‘자기 현동 석보리(磁器 縣東 石保里)’라는 기록을 통해 1420년 중엽부터 16세기 초까지 요업을 지속한 가마임을 알 수 있다. 양질의 분청사기를 굽던 매우 중요한 가마터로 1964년 사적141호로 지정됐다.

첫 가마터 학술조사는 1963년 6월 20일부터 7월 16일까지 약 1개월간 계속됐으나 가마 주변의 퇴적층 조사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이후 1991년 국립광주박물관이 주관한 제2차 발굴이 실행, 7기의 가마 중 2호 가마가 복원돼 현재 보호각 안에서 전시 중이다.

2호 가마는 총 길이 20.6m, 너비 1.3m 내외의 규모로 서쪽 벽(아궁이에서 바라보았을 때)에 6곳의 측면 출입구가 있으며 13도의 경사면에 진흙과 돌로 축조, 전체 가마의 소성실이 나뉘어져 있지 않고 오직 하나로 구성된 ‘단실요’ 구조다. 번조실 바닥은 진흙으로 다지고 그 위에 모래를 깔았으며 측면 출입구가 있는 곳의 바닥은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광주 충효동 요지 아궁이 부분 (출서: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18.
광주 충효동 요지 아궁이 부분 (출서: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5.18.

아궁이는 길이 1.7m, 너비 1.6m로 원형이고 번조실로 올라가는 불턱의 높이는 약 90㎝이며 진흙과 돌로 축조했다. 아궁이의 입구는 양쪽에 여러 개의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현재의 너비는 35㎝이다. 굴뚝 시설은 연기에 그을린 돌무더기로 인해 돌로 축조됐을 것으로 추정되며 연도로 생각되는 길이 60㎝, 너비 40㎝의 골이 있다.

◆ 충효동 가마터 출토 유물

출토 유물은 분청사기가 대부분이며 그 다음으로 백자와 청자가 차지한다. 이외에도 흑유, 토기, 요도구 등도 함께 출토됐다. 그릇의 종류는 대접과 접시가 주종을 이루고 합, 발, 호, 병, 매병, 제기, 마상배, 잔, 장군, 벼루, 주자 등 다양한 기종이 확인됐다.

장식적으로는 분청사기 대접과 접시에는 인화문이 가장 많고 병과 항아리에는 상감, 조화, 박지문양이 있으며, 점차 시간이 지나자 귀얄분청사기가 주류를 이루면서 백자로 이행됐음을 알 수 있다. 백자는 태토의 강도가 연질과 경질로 뚜렷이 구분되며, 분청사기와 연질백자는 한 가마 안에서 함께 소성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충효동 요지에서 출토된 분청사기, 백자, 갑발 등 도자기와 요도구에서는 많은 명문들이 확인된다. 그 가운데 인화분청의 경우 양질과 조질에 따라 명문의 내용이 현저하게 달라지는 점이 주목된다.

양질의 분청사기에는 주로 굽 안바닥에 ‘金’ ‘朴金’ ‘李万’ ‘金咸’ ‘朴用’ ‘德金’ 등이 칼로 새겨져 있는데 이는 장인들의 성과 이름으로 추정된다. 그밖에 양질의 분청사기 가운데는 지명과 관청명이 백상감된 ‘무진내섬(茂珍內贍)’이 확인됐으나 조질의 인화분청에는 장인의 이름은 보이지 않고 ‘정윤이(正閏二)’ ‘공별(公別)’ ‘광(光)’ ‘광공(光公)’ ‘광별(光別)’ ‘광상(光上)’ 등 날짜와 지명을 표시한 예가 많이 확인된다.

기명의 위치는 내저 중앙, 굽 안바닥 등에서 보이며 음각되거나 인각된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마상배에 새겨져 있는 ‘어존’이라는 한글 명문은 1446(세종 28)년 ‘훈민정음’을 반포한 후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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