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ㆍ정비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 결과

광화문 월대유적 전경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4.25.
광화문 월대유적 전경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4.25.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정부가 고종년간 축조된 월대(越臺, 月臺) 복원을 위한 단서를 확보했다. 특히 월대는 축조 이후 4단계의 변화과정이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광화문 월대의 복원ㆍ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

월대는 궁궐의 정전과 같이 중요 건물에 넓게 설치한 대(臺)로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을 쌓은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경복궁 영건일기’의 기록과 1890년대 이후로 전해지는 사진 자료에 따르면, 광화문 월대는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이용한 기단석과 계단석, 그리고 난간석을 두르고 내부를 흙으로 채워 만든 건축구조물이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월대의 전체 규모(남북길이 48.7m, 동서너비 29.7m),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너비 약 7m의 어도지 기초시설, 월대의 서편과 달리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동편의 모습을 통해 고종 대 경복궁 중건 시 월대의 전체 모습 등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광화문 월대의 복원을 위한 실물자료를 확보한 것이 이번 발굴조사의 가장 큰 성과이다.

먼저 광화문 월대는 동ㆍ서 외곽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길이 120~270㎝, 너비 30~50㎝, 두께 20~40㎝)을 이용해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내부는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들었다. 월대의 남쪽에는 장대석을 이용해 계단을 조성했는데, 그 중 어도와 연결되는 중앙부는 소맷돌을 이용해 동ㆍ서 계단과 분리했다. 특히 어도계단지의 경우 일제강점기 전차선로에 의해 일부 훼손됐으나 소맷돌을 받쳤던 지대석이 확인돼 월대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고종년간 월대 축조 이후 크게 4단계의 변화과정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1단계에서는 월대 축조 당시로 남쪽에 경계가 나눠진 3개의 계단이 존재했으며, 당시 월대의 평면형태는 역철자형( )이었다. 2단계에서는 중앙의 어도계단지가 경사로로 변화되고, 3단계에서는 경사로의 범위가 확장되고 계단이 동ㆍ서 외곽으로 축소 변형됐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단선(외줄) 형태의 전차선로가 설치됐다. 4단계에서는 전차선로의 복선(겹줄)화로 월대가 파괴되면서 난간석 등이 철거되고 광화문의 이건과 함께 도로로 사용됐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우리나라 궁궐의 발굴·복원사업을 충실히 수행해, 국민들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충분히 누리고 경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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