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0억 규모 지분 교환해
미래 모빌리티 협력 동맹
31일 KT 주총 의결권 행사
주주로 KT 경영에 개입 중
“정치적 이유가 가장 클 것”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천지일보DB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천지일보DB

[천지일보=김정필·정다준·손지하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이례적으로 KT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 개입해 의결권을 행사한다. 대주주로서 기업가치 제고에 해가 될 만한 CEO를 선임하는 문제에 반대 의사를 표현할 수 있지만 현대차와 KT의 ‘지분 교환’ 혈맹을 맺은 후 6개월 만에 보인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와 함께 31일 KT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선임 건에 대해 반대 표를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KT와의 동맹과 주주로서의 이익보다는 정치적으로 현 정부와 뜻을 함께하는 것에 무게를 뒀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과 일부 여당 의원은 노골적으로 KT의 지배구조를 걸고 넘어지며 구현모 대표의 연임과 윤경림 후보자(사장)가 CEO에 오르는 것에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지분 교환을 통해 상대방 회사 주주가 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사업 제휴 파트너십 관계를 공고히 하겠다.” 구현모 대표 시절인 지난해 9월 현대차그룹은 이같이 KT와 7500억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하고 미래 모빌리티 사업 협력을 강화한 바 있다. ‘혈맹’ 관계를 맺고 자율주행은 물론 도심항공교통(UAM)까지 통신망과 모빌리티 간 긴밀한 연계에 나서기 위함이다. 이로써 현대차는 KT의 2대 주주가 됐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현대차는 구 대표의 연임에 반기를 든 최대 주주 국민연금의 편에 섰다. KT에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 대주주의 의견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고 이번 주종에서도 ‘KT 흔들기’에 동참할 전망이다. 의결권 행사는 당연한 주주의 권리다. 다만 주주가 CEO 선임 등 안건에 반대하는 경우는 그 CEO가 주주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우려될 때다.

이는 현대차가 구 대표가 이끌던 KT와의 미래를 생각해 우호적 관계를 맺은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언론을 통해 이번 사안에 대해 명확한 반대 신호가 흘러나온 것도 이례적이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비밀투표’라며 “민감한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의결권 행사 여부를 알 수 있는 관계자들을 통해 얘기가 흘러나와 일파만파 퍼졌다.

KT 로고. (제공: KT) ⓒ천지일보 2021.1.22
KT 로고. (제공: KT) ⓒ천지일보 2021.1.22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안에 현대차의 정치적인 전략이 담겨 있다고 봤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현대차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의사결정을 한다고 보긴 어렵다. 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며 “현대차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직접적 손실보다는 정권에 밉보였을 때, 말을 안 들었을 때 입을 손실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또 “이 손실이 현대차에는 경제적인 것일 수도 있고, 총수 일가에 대한 것일 수 있다”며 “아직 정의선 회장에 대한 경영승계가 완성되지 않아서 정부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현대차의 주주도 국민연금이라 영향을 받는다. 정부가 원하는 방향, 국민연금이 원하는 방향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도 “당연히 그렇게(정치적인 이유로) 볼 수밖에 없다. 윤 사장이 전 대표(구현모)의 심복이라는 것을 사실상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교체하는 의미가 없다. 현대차 입장에서도 의사결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업계 차원에서 정당한 의사 표현을 한 것이라는 시각도 제시했다. 그는 “KT 차기 대표이사 과정에서 윤경림 후보가 사퇴하고 직무대행 체제로 가니깐 지배구조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KT에 이런 돌아가는 모양새가 현대차 입장에서는 못마땅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 같다”고 예상했다.

또 “대표이사 선임 등에서 결정이 나야 현대차에서도 스탠스를 명확하게 정하지 않을까 싶다”며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서 뽑으면 되는데 자꾸 의사결정이 왜곡되는 모양새가 나오니깐 그것 때문에 불만을 표시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구 대표의 쌍둥이 형인 구준모씨의 회사를 인수한 것이 ‘보은성 투자’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망이 현대차까지 확대될 것을 우려한 ‘눈치 보기’라는 해석도 나왔다.

구 대표는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관련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 시민단체에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윤 사장과 함께 고발된 상태다. 세부 고발 항목은 ▲KDFS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구 대표의 쌍둥이 형 구준모씨에 대한 불법 지원 ▲KT 소유 호텔과 관련된 정치권 결탁 ▲KT 사외이사에 대한 향응과 접대 등 4개 의혹이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등을 돌린 이유는 복합적일 것이다. 구 대표의 연임은 국민의힘이 반대하던 시점부터 사실상 물건너간 것이고 구준모씨 회사가 현대차에 팔린 것과 관련해서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현대차도 자유롭진 못할텐데 당연히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정의선 회장이 전개하려고 하는 미래 모빌리티 사업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고 앞으로 정부와 협의할 부분이 많은데 정부와 척을 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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