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계약, 과도한 노동
15년간 1200만원만 지급돼
제2·3의 사태 징조 넘쳐나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천지일보 2023.03.28.​‘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고 이우영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28.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28.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28.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만화 ‘검정고무신’ 창작자인 고(故) 이우영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에서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누르며 목메 하는 그의 모습은 그간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왔는지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1990년대 한국 인기 만화로 떠오른 ‘검정고무신’. 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초등학생 기영이, 중학생 기철이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담아낸 만화는 국민에게 향수와 재미를 선사하며 대표 만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가 저작권 분쟁 도중 세상을 등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고 이우영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28.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고 이우영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28.

◆만화 사랑한 형제, 캐릭터 아빠 돼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우진 작가는 “어린 시절 저희 형제는 만화에 빠져서 만화를 사랑했다. 부모님이 일을 나가면 골방에 앉아서 해가 가는 줄도 모르고 만화를 그렸다”며 “그렇게 검정고무신의 캐릭터를 낳았고, 검정고무신 캐릭터의 아빠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살아 숨 쉬던 기영과 가족들은 저희 형제에게 응원과 격려를 해줄 것 같았다”며 “하지만 2007년 인연은 인연이 아닌 악연이 되어 형의 영혼까지 갉아먹고 오늘날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전했다.

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은 “창작자에게 작품은 자신의 삶의 증거이자 분신과도 같다”며 “불공정한 계약,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강탈하는 행위는 창작자에겐 삶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어 “형설출판사는 이우영 작가가 자식보다 소중하다고 말한 캐릭터의 저작권을 부당하게 갈취하고 작가의 생명같은 창작까지 가로막아 이우영 작가의 삶을 부정했다”며 “이들은 작가가 손수 만든 캐릭터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과도한 노동, 불법공유로 인한 허탈함, 불공정한 계약이라는 힘든 환경 속에서 우리는 자의 타의로 죽어가는 제2, 3의 이우영을 만나게 될 것이고, 이미 징조는 차고 넘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에서는 고 이우영 작가의 불공정한 계약 내용도 공개됐다. 강욱천 한국민족예술총연합회 사무총장은 “검정고무신 사업자는 15년 동안 원작자에게 1200만원을 지급했다”며 “이는 1년에 80만원을 지급한 꼴”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자는 저작 관련 사업에 대해 포괄적이고 무제한적이고 무기한의 제한 사업권을 갖고 있으며 원작인 검정고무신을 통해 총 77개의 사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형설출판사의 저작권 반환을 포함해 유족과 만화인들에 대한 사과, 원작자에 대한 2건의 민소소송 취하, 재발 방지를 위한 근원적 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천지일보 2023.03.28.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천지일보 2023.03.28.

◆표준계약서 개정에 초점

대책위원회는 우선 법률안 개정보다는 표준계약서 개정에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은 김성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시대가 변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만화·웹툰계의 계약서는 현재의 창작 환경을 다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며 “이 부분을 최대한 반영하고 특히 창작자들의 권익이 침탈되는 경우가 발생하면 안 되므로, 이 부분을 계약서에 담아내겠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1일 웹툰작가노동조합, 한국여성만화가협회 등 창작자 단체들은 문체부의 만화계 표준계약서 개정 착수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개악(改惡)’이라며 규탄한 바 있다. 당시 단체는 “문체부가 내놓은 표준계약서 개정안을 그대로 사용하면 많은 창작자가 더 나쁜 환경에서 노예처럼 생활하게 된다”며 “웹툰 창작자 환경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연구용역을 철회하고 창작자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표준계약서 개정 초안이 그간 창작자들이 상생협의체에서 요구한 내용이나 실제로 업계에서 필요한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개정 초안대로 간다면, 오히려 개정 전보다 창작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김은정 사무처장은 “예술가의 권리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지만 열악한 현실과 불공정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불공정 행위 근절 의지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공정 관행을 획기적으로 뿌리 뽑을 대안을 마련하고, 문화예술 분야의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는데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며 “말로만이 아닌 이제는 결과를 보여줄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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