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이 충격의 KO패로 링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강력한 힘과 월등한 체격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고목나무처럼 맥없이 풀썩 쓰러진 최홍만의 TV 화면을 보니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얼마 전 필 미켈슨 모습이 대비돼 떠올랐다. 둘 다 공교롭게도 돈 문제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으나 서로의 결과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태서 최홍만은 무릎을 꿇었던 데 반해, 필 미켈슨은 세계 톱 10서 20위로 밀려났으면서도 만면에 웃음을 띤 표정을 보였던 것이다.

최홍만은 남한테 빌린 돈을 갚지 않아 사기혐의로 고소당했고, 필 미켈슨은 불법 스포츠도박에 자금을 건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중압감을 갖고 경기를 치렀으면서도 둘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최홍만은 지난 23일 지인으로부터 1억 원 상당의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아 사기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됐다. 최홍만은 2013년 12월 마카오에서 A씨로부터 “급하게 쓸데가 있다”며 1억원을, 지난해 10월에는 B씨로부터 “급전이 필요하다”며 2550만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로 고소당한 바 있다. 필 미켈슨은 불법 스포츠도박에 자금을 공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ESPN은 지난달 30일 불법 스포츠도박에 연루돼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은 그레고리 실베이라가 3가지 항목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 자금을 댄 3명의 클라이언트 중 필 미켈슨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아직은 불법 스포츠 도박에 미켈슨이 직접 참여했다는 정황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미 PGA투어에서 가장 신사적인 선수로 평가받았던 그의 이미지는 상당한 손상을 받았다.
중요 경기에 나서야 했던 둘의 압박감은 어느 때보다도 컸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로 법적인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던 둘은 경기에서도 부진을 보이면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6년 만에 이종격투기 대회에 출격해 팬들에게 큰 기대감을 안겼던 최홍만은 지난 25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열린 로드 FC 24에서 1라운드 3분 41초를 남기고 브라질 출신 카를로스 토요타에게 라이트 훅을 맞고 쓰러졌다. 최홍만과 카를로스의 신장 차이는 무려 28cm나 차이 나고 리치 차이도 상당했다. 경기 전 전문가들은 최홍만의 승리를 내다봤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최홍만이 어이없이 KO패를 당하자 그가 안 좋은 보도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현지에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허나 미켈슨은 최홍만과 달랐다. 정신적으로 큰 부담을 느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멘탈게임’인 골프에서 별로 흔들리는 기색이 없이 경기를 치러냈다. 올 시즌 3번째 메이저대회인 디 오픈에서 2013년 이 대회 우승자인 미켈슨은 지난주 마지막 날 쾌조의 샷으로 우승권인 톱 10을 유지하다가 17번 홀에서 실수를 범하는 바람에 공동 20위로 경기를 마쳐야 했다.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진 미켈슨은 오히려 “이번 주 플레이는 즐거웠고 샷도 괜찮다”며 “가족들도 2주간 이곳에 머물렀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둘의 결과를 보면서 진정한 프로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봤다. 프로는 중요 경기에서는 죽기 살기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한다. 승자독식주의로 경기에서 지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이 냉정한 프로의 세계이다. 프로는 아무리 주위 환경이 어렵더라도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며 이를 꿋꿋하게 헤쳐나가야만 살 수 있다. 팬들이 박수를 보내는 것은 이럴 때이다.

최홍만이 맥없이 무너진 것은 그를 아끼는 팬들의 열화같은 성원을 저버린 무책임한 모습이었다. 마음의 응어리를 털어내고 인내하면서 묵묵히 경기력을 관리해 나가며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때 팬들은 프로의 강인한 정신력을 높게 평가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홍만은 아쉬웠고, 미켈슨은 칭찬을 받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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