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국내 뿌리산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뿌리산업이란 소재를 부품으로 제조하고 부품을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기초산업으로 우리나라 경제의 중심인 제조업에 내재된 산업이다.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접합, 표면처리, 열처리 등 기존 6대 뿌리기술을 포함해 사출·프레스, 3D프린팅, 정밀가공, 엔지니어링 설계, 산업지능형 소프트웨어, 로봇, 센서, 산업용 필름 및 지류 등 8대 신규 기술이 있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핵심 품목·기술 338개 중에서 뿌리 관련 기술이 70개(20.7%)를 차지한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가 발간한 ‘2021년 뿌리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3년간 국내 뿌리산업의 사업체 수, 종사자 수, 매출액 등이 모두 줄면서 뿌리산업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국내 뿌리기업은 2018년 3만 2606개에서 2020년 말 기준 3만 553개로 2년 만에 2000개 넘게 줄었다. 지난 3년간 뿌리산업 매출액은 2018년 165조 2385억원에서 2020년엔 152조 7233억원으로 13조원가량 매출이 줄었다. 영업이익 역시 2018년 6조 7599억원에서 2020년 5조 923억원으로 감소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국가별 최고 뿌리기술 수준을 보면 일본이 9개로 가장 많았고 미국이 5개, 한국은 하나도 없었다. 종합적인 국가별 수준은 일본이 가장 우수했고, 그 뒤를 미국, 유럽, 한국, 중국이 이었다. 국가 간 기술 격차는 미국이 일본과 0.1년으로 가장 적었고, 이어 유럽(0.2년), 한국(1.3년), 중국(1.9년) 순이었다.

한국의 기술 수준이 비교적 높은 상위 2개 분야는 용접·접합과 사출·프레스였고 일본 기술력을 기준으로 90% 수준을 보였다. 기술 수준 하위 3개 분야는 로봇, 산업지능형 소프트웨어, 센서로 일본의 80% 수준에 머물렀다.

뿌리산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이고 힘든 업종이라는 인식 때문에 청장년층이 취업을 기피하고 있어 인력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2020년 말 기준 전체 뿌리산업 종사자의 64.4%는 40대 이상이다. 특히 고학력을 가진 고급인재인 석·박사급 인력은 1.0%(4만 3241명)로 타 산업에 비해 현저히 낮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청년층 대부분이 서비스 업종으로 이직해 뿌리산업의 인력 문제가 더 악화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21년 말 관계부처 합동으로 ‘제3차 뿌리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계획에는 고용장려금 지원, 외국인 추가 고용 허용과 쿼터 확대 등 인력 수급난을 개선한다. 납품대금 연동 등 원부자재 수급 여건도 개선하고 뿌리 명가 기업에 가업상속공제를 최대 1000억원으로 확대하고 뿌리산업의 디지털 대전환(DX)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금년에는 뿌리산업의 외국인 숙련 기능 인력을 지난해(120명)의 3배 넘게 400명으로 늘린다. 사업장별 고용 허용 인원은 기존 최대 5명에서 8명으로 확대한다. 산업부는 400명 중 상반기 비중을 높여 인력난을 조기에 해소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어 능력, 근무 경력, 숙련도 등을 평가해 선발하며 숙련기능인력 비자로 전환되면 체류 기간 등에 대한 제한이 없어진다.

뿌리산업은 제조업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 뿌리산업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 더욱 획기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스마트공장 등 4차 산업혁명과 뿌리산업을 접목시키고 로봇·센서·산업지능형 소프트웨어 등 핵심 뿌리산업에 대한 예산 지원과 함께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또한 뿌리산업 공동 기술개발(R&D)을 활성화하는 등 혁신역량을 제고하고 뿌리업계에 한해 외국인 고용허가제, 주52시간제 등 규제를 전면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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