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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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도 ‘빌라왕’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지난 10월 1139채의 빌라를 소유한 ‘빌라왕’이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전세 사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빌라왕 김씨는 법적으로만 소유했지 사실상 바지사장이었다고 한다. 그가 갑자기 죽음으로써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어떤 문제든지 하나의 진단과 하나의 해법만 있을 수는 없다. 문제의 성격에 따라 간단한 처방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있고 근본적인 처방을 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것도 있다.

빌라왕 문제는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다. 전세 사기는 문제의 징후가 드러난 지 오래됐다. 수십년 된 문제다. 그럼에도 국가는 전세 사기 피해에 대한 통계조차 내지 않고 계속 방치했다. 이제는 완전히 곪아 터지는 단계까지 왔다.

1139채 빌라왕 사건이 실상을 웅변해 준다. 빌라왕 사건은 전세 사기의 종합세트다.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이 다 동원됐다. 도둑들이 온 세상을 판치고 다닌다면 도둑들의 잘못이 큰가, 아니면 도둑을 막을 수 있는 방도를 내어 실행하지 않은 사회와 국가의 잘못이 큰가?

국토부와 수사 당국이 조사와 수사를 벌이면서 진실의 일단이 드러났다. 수백 채, 수천 채를 ‘소유’한 빌라왕은 한둘이 아니다. 청년과 서민의 돈을 갈취하는 복마전에는 건축업자, 분양업자, 브로커,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 명의 제공자가 얽혀 있다. 대선 출마 전후 윤 대통령이 저격했던 ‘이권 카르텔’이 작동한다.

어둠의 세력이 ‘이권 카르텔’을 형성해 개인은 물론 가정을 파탄시키는 전세 사기를 벌일 수 있는 이유는 국가기관의 직무유기와 직무태만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의 범죄를 캐겠다고 압수수색을 100번 넘게 하던 결기는 어디 가고 ‘주거권 유린 민생범죄’가 판치도록 방치한 이유가 무엇인가? 공정과 상식, 원칙이 통용되는 법률이 있고 추상같은 법 집행이 있다면 사기꾼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수천억씩 해 먹을 수 있겠는가?

청년 전세대출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사기 친 사건까지 터졌다. 전세 사기 범죄자들의 기술은 나날이 진화한다. 정부가 내어놓은 제도를 농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국회, 사법당국은 공적인 책임감은 져버리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무사안일주의와 지독한 보신주의에 빠져 문제를 방치한다. 예방책은 고사하고 범인들과 범죄조직에 대한 사법처리마저 사실상 외면해 왔다.

정부는 전세 사기 티에프(TF)를 만든다, 법을 바꾼다,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한다, 수사를 의뢰한다, 보증제도를 개선한다, 대출 편의를 제공한다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말이다. 상투적인 방법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전세 살러 들어가는 사람에게 있어 전세금은 전 재산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빚까지 끼어 있는 경우도 많다. 빌라를 찾는 사람들 가운데 경제 형편이 넉넉한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직접 땀 흘려 돈을 버는 사람들이고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이들이 무엇을 잘못했나? 열심히 산 죄밖에 없다.

어렵게 마련한 ‘보금자리’가 고통을 가져다주는 ‘두통거리’가 되도록 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바로 국가다. 정부는 자신이 할 일 하지 않아 사기꾼이 판치게 만든 책임 반드시 져야 한다. 결자해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할 것을 제안한다. 손해액 전액이 무리라면 최소 80%라도 배상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가가 먼저 배상하고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라. 나머지 손실액은 국가가 떠안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국가기관이 직무유기한 책임을 지는 방법이자 전세 사기를 예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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