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승 7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참석 중인 윤상현 대통령 특보와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이 만나면서 남북관계에 새로운 해빙기가 오는 건 아닌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무려 40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윤상현 특보 측 관계자는 러시아 전승절 행사 만찬 중에 자리를 함께한 두 사람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관계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회동 소식은 현지 TV를 통해서도 보도됐으며, 양측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는데 문제는 두 대표가 과연 정상들의 친서를 주고받았는지 여부다. 최소한 친필친서가 아니더라도 구두친서 정도는 휴대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직접 모스크바에 가지는 않았지만 남측에서 윤상현 특보가 오며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측근이라는 판단하에 뭔가 이번 기회에 대남의존도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로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김정은은 그 어떤 강대국보다 한국 측에 의존해 경제문제를 푸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임을 이번 모스크바 방문 준비과정에서 깨달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은 내부적으로 안정이 위협받고 있는 불길한 상황에 놓여있다. 공개처형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의 금고는 고갈 직전 상황이다. 지난주 국가정보원은 국회 보고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올해 들어서만 고위관계자 15명을 처형하는 등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제1위원장이 지난달 24~25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에서 연설하는 사진을 북한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이 26일 보도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 제1위원장은 지난 1월 산림녹화 사업에 불만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차관급인 임업성 부상을 처형했다.

또 2월에는 대동강변에 건설 중인 과학기술전당의 설계와 관련, ‘꽃 모양으로 하라’는 지시에 대해 불평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을 처형했다. 3월에는 리설주 관련 스캔들에 엮인 은하수관현악단의 총감독 등 4명을 간첩 혐의로 총살하기도 했다. 처형자는 2012년 17명, 2013년 10명, 2014년 41명을 처형했고 올해는 벌써 15명이 처형됐는데,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즉흥적 지시를 내서 말을 안 들으면 군 강등을 시켰다가 복권시키는 등 매우 강압적이고 어려운 통치를 하고 있다.

한편 정보기술(IT) 전문가 육성에 집중하고 있는 북한이 해킹 조직을 크게 강화, 6개 조직 1700명의 전문가를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을 지원하는 조직만도 13개 조직 4200명에서 17개 조직 5100명으로 크게 늘렸다. 한편 북한에서는 쿠쿠밥솥 등 우리나라의 압력밥솥이 상위층을 중심으로 크게 인기를 끄는 등 소비문화가 서구식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관계자는 “5만 달러 이상을 갖고 있는 인구의 1%는 상당히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보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쿠쿠밥솥을 쓰는 것이 굉장히 유행이었다”며 “남한풍 서구식 소비행태가 유행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김정은은 치솟는 신흥부자의 욕구와 하락하는 일반 주민들의 충성심을 어떻게 조절하며 자기식 체제를 이식하느냐 하는 딜레마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의 특사급이 모스크바에서 만났지만 아직 남북 간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특히 전단문제는 그 핵심이다. 북한은 우리 측에 대고 전단만 뿌리지 않으면 모든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 달에는 서울에 유엔인권사무소가 문을 열게 되는데 이것 역시 남북관계 개선의 무서운 복병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의 비위나 맞추며 무조건 화해협력 지상주의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이 되는 올해 박근혜 정부가 풀어 가야 할 통일의 숙제는 참으로 무겁고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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