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현명한 미·중 지렛대 외교인가, 아니면 양강 사이에서 눈치 보며 시간을 끌다 새우등 터지는 무결단 외교인가. 득실(得失)을 계산한 지혜로운 비밀 외교인가, 아니면 컨트롤타워가 없어 화(禍)를 자초한 ‘전략적 모호성’인가.’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국익을 위해 초당적 대승적으로 결정돼야 할 국방·안보문제가 볼썽사나운 외교이슈 정치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과연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 사드는 대(對)북용인가, 대(對)중국·러시아용인가. 주한미군에 배치되면 결국 무기체계 일원화 논리에 떼밀려 한국이 거액을 들여 사들여야 하는 것은 아닌가.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탐지용으로 써먹을 것인가, 아닌가. 중국은 왜 턱없이 발끈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한 견제능력마저 미약하다면 고비용 저효율은 아닌가. 사드의 미사일방어성능은 어떠하며 북한의 근거리 미사일에 대해서도 방어능력이 있는가. 대(對)북용으로 사드가 굳이 필요했다면 기존에 구입한 패트리어트미사일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 정부 내에서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우물쭈물하고 있는 인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사드 도입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을 우리가 다 부담하면서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고 미·중 틈바구니 사이의 기싸움을 활용하려는 전략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방부는 사드 도입이 우리 군이 목표로 하는 미사일 방어체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면서도 주한미군이 작전상 들여오는 것은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2013년 10월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우리의 미사일방어 체계는 북한 미사일에 대한 요격 시스템으로 근본적으로 미국 본토 방어용인 미국 미사일방어 체계와 목표·범위·성능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하층방어를 하기 때문에 SM-3(고고도 대공미사일)는 필요 없고 사드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가 구태여 필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김 전 국방장관은 그러나 지난해 6월 “주한미군이 (자체 비용으로) 사드를 전력화하는 것은 상관없다”고 말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지난해 10월 “사드는 방어 범위가 넓어 만일 배치된다면 주한미군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방어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전략적 모호성’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외교적 지렛대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침묵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비공개회의에서나 할 얘기가 밖으로 새어나와 동맹국인 미국을 좌불안석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다. 또한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했다. 국민을 도외시한 밀실행정은 나쁘다고 하겠지만 원래 국방·외교가 공개 논의만 할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미국은 북핵의 위협에서 주한미군 기지를 보호하려면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중국은 공개적으로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고 나섰고, 한국 국방부는 이는 미국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중국의 영향력 행사 저의에 강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사드 배치문제를 논의하자는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제안을 거부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와 원유철 정책위원장은 사드 도입에 찬성했지만 김무성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당 의원총회에서 그런 예민한 부분을 결정할 상황은 아니다”며 “그건 (정부에) 맡겨놔야 한다”고 했다. 대권주자의 몸사리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논의를 다 까발리는 나이브한 대응보다는 전략적인 노회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한 모습이 엿보인다. 주무부서는 국방부이지만 범정부적으로 중지(衆智)를 모아야 할 사안이다. 이병호 국정원장 후보자가 “사드 문제는 주권에 관한 것이다.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공격을 대비하려면 어떤 정책 옵션도 배제해선 안 된다”고 말한 것도 이 맥락으로 보이지만 국민은 왠지 불안하다.

사드 문제 말고도 엇박자를 내거나 국민을 불신케 하는 외교정책이 또 있다. 올 들어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관심이 전에 없이 뜨거운 상황에서 정종욱 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난데없이 ‘비합의에 의한 체제통일’ 운운하며 흡수통일론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통일부가 “흡수통일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지만 북한의 반발은 거셌고, 남북관계의 경색은 풀릴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문제도 미국의 눈치를 보다 실기(失機)한 것 같다. 1992년 한·중수교 때처럼 국익을 우선한 결단력 있는 외교가 아쉽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국제적 흐름 속에서 무엇이 국익을 위해 옳은지 정부가 신속하고도 명민하게 선택해 국민에게 밝히는 게 도리일 것이다. 우유부단해서가 아니라 전략적 활용을 위한 시간벌기라면 국민들도 얼마든지 기다려줄 용의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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