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일본 도쿄 근교의 닛코(日光)에 있는 도쇼구(東照宮)에는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마감하고 천하통일을 이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위패가 있다. 이곳의 명물 중 하나는 마구간 건물에 새겨진 세 마리의 원숭이 조각상 산자루(三猿)다. 세 마리의 원숭이는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각각 눈과 귀, 입을 가리고 있다.

예(禮)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나타낸다는 해석도 있고,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마음, 즉 인내의 가치를 몸소 실천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정신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원숭이의 모습을 흉내 내며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살다 보면 보고서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알고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유리할 때가 있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당장 주먹을 날려 버려야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도 꾹 참고 견딜 수밖에 없을 때가 많다. 새로 시집 온 며느리가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이라며 모진 세월을 견뎌냈듯이, 우는 주먹을 달래며 참고 견뎌야 할 때가 많은 것이다.

참고 견딘다는 것은 좋은 말이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처럼, 참고 견딤에 대한 가치를 역설하는 말들이 무수하다. 일본인들은 갖은 굴욕을 견디고 마침내 아수라장 같던 전국시대를 끝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최고의 영웅으로 꼽는다.

일본 사람들은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긴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보다는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인생을 사는 것이라는 그의 철학에 머리를 조아린다. ‘돌 위에라도 삼년’이라며 참고 또 참는 인내의 의미를 뼈 속 깊이 간직한다.

그래서 그들은 도쇼구에 있는 세 마리 원숭이 조각상을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 외국인들도 참으로 귀한 가르침이라며 그 아래서 찰칵 찰칵 사진을 찍어 댄다. 하지만 도쇼구의 세 마리 원숭이는 야비하고 졸렬한 일본인의 모습을 절묘하게 풍자하는 그들의 자화상일 뿐이다.

잘못된 역사를 보지 않으려 눈을 가리고, 사과하고 반성하라는 이웃 나라의 목소리에 귀와 입을 틀어막는 모습이 도쇼구의 원숭이 그 모습이다. 그들이 아무리 인내의 교훈 따위를 들먹이며 도쇼구의 원숭이를 찬양해도, 이웃나라 사람들의 눈에 비친 원숭이에는 교할하고 뻔뻔한 그들의 모습이 겹쳐 보일 뿐이다.

야스쿠니 신사 도발을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식민지배로 고통을 안겼던 이웃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식민지시대의 영화를 잃어버린 ‘분한 마음’이 더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잃어버린 제국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절절한 것이다. 그들은 도쇼구의 원숭이들처럼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제는 헌법을 바꾸고 전쟁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저희들끼리는 화(和)를 깨트리지 말고,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며 서로에게 예의를 다하지만, 이웃나라에게 하는 짓을 보면 정반대다. 속마음인 혼네(本音)와 겉 표정인 다테마에(建前)가 있듯,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들이다. 빈틈이 보이고 약하다 싶으면 바로 쳐들어가 삼키고, 불리하다 싶으면 바로 머리를 조아리며 살 길을 찾는, 전국시대의 피가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우리는 두 눈 똑바로 뜨고, 귀를 활짝 열어 놓고 있어야 한다. 도쇼구의 원숭이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보고 듣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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