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image

우리 고전에 그려진 토끼는 지혜의 동물이다. 바다 용궁 충신 별주부의 꾐에 속아 유인된 토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구했다. 토끼 간이 필요한 용왕에게 간을 산속에 숨겨두고 왔다는 기지로 죽음을 면한다.

수궁가는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하나다. 토끼와 거북을 주인공으로 삼은 재치 있고 풍자적인 소리로 많이 불려진다. 토끼전, 별주부전, 불로초, 토별산수록, 토별가, 토끼타령, 별주부타령 등 제목도 다양하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재미있게 풍자했다. 등장인물들의 입담이 구수하고 재미있다. 육지로 토끼를 잡으러가는 별주부는 용궁을 나가면서 오로지 마누라가 걱정이다. 건너 동네에 있는 남생이가 자주 집에 찾아오는 것이 걸린다.

가기는 가되 못 잊고 가는 것이 있네. 무엇을 그다지 못 잊어요?늙은 모친 조석공대를 못 잊어요임금 신하 충성 사직을 못 잊어요? 규중(閨中)의 젊은 아내 절행지사를 못 잊어요? 그 말은 방불허나 뒤 진털밭 남생이가 흠일세

배 가르는 대목에서는 용왕을 속이는 토끼의 항변이 웃음을 자아낸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서 이런 꾀를 냈다.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소퇴의 간인 즉 월륜정기로 생겼삽더니/ 보름이면 간을 내고 그믐이면 간을 드러내나/ 세상에 병객(病客)들이 소퇴곤 얼른 하면 간을 달라고/ 보채기로 간을 내어 파소 밑에다 꼭꼭 싸서/ 칡노로 칭칭 동여 의주 석산계 수나무 밑에 감쳐 두었기로···’

계묘년은 검은 토끼해로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주는 해라고 한다. 지난해의 얼룩진 암운을 말끔히 걷고 새로운 한 해의 장을 열어야 한다.

우리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속담을 듣지 않고 살아 온 국민들은 없을 것 같다. 가장 힘든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것이 우리민족 아닌가.

새해 담론은 모두 희망을 갖자는 것이다. 그리고 세대와 세대, 지역과 지역의 높은 담장을 허물고 대화하고 반목의 매듭을 풀어야 함을 제안한다.

공자는 노자안지 소자회지(老子安之 少者懷之)’를 생활신조로 삼았다. ‘노인을 안락하게 하고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의 신조이지만 이 시대 가장 필요한 가르침으로 와 닿는다.

세대 간의 갈등은 비단 현대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담벼락 낙서에도 젊은이는 버릇이 없다는 글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글에도 노년들은 젊은이들의 행태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이를 잊고 친구로 삼는 망년지교(忘年之交)가 유행했다.

아들 같은 20대 과거급제자는 60의 나이에 등과한 노인들과도 친구로 지내며 우정을 쌓았다. 동석해 술을 마실 때도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갖췄다. 조선시대 덕목을 지닌 인물들의 간찰(편지)을 보면 노소간 상대에 대한 깍듯한 예우를 발견할 수 있다.

기성세대는 젊은세대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욕을 하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들을 포용하고 성장한 인격체로 대우해야 한다.

새해는 지난해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예상되고 있다. 이를 이겨내야 할 힘은 정부에게 있으며 국민들도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한다. 죽음 직전에서도 기지로 생명을 구한 토끼의 지혜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키워드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