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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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한 가족 영화가 있다. 바로 ‘워 위드 그랜파(The War with Grandpa)’다. 로버트 드니로, 우마 서먼 등 명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할아버지에게 방을 뺏긴 손자의 전쟁 선포를 코믹하게 그려 웃음을 선사한 영화다.

노령으로 불의의 사고를 입은 할아버지는 딸의 집에서 살게 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오자 손자는 다락방으로 쫓겨났다. 얘기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공격과 방어가 배꼽을 잡을 정도로 재미있다.

할머니와 손녀, 손자가 함께 2여년 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완성한 ‘동화책(한재원 저)’이 서점가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손녀와 앉아서 놀이 형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만들다가 차츰 그림과 글로 남기게 됐다고 한다. 손주들을 엄마 이상의 사랑으로 키운 할머니의 지혜가 담긴 책이다.

세종시에 사는 23살의 최모씨는 지금 대학 4학년이다. 6살 어린 나이에 할머니 손에 맡겨지고 난 뒤 17년이나 그 품에서 자랐다. 농사꾼인 할머니는 올해로 66세의 나이다.

할머니는 부모를 잃은 손주를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늘 거친 손으로 보듬어주었다. 처음에는 농사 거들기 싫어 도망가기도 하고 겨울에 쓸 땔감을 구하기 싫어 투정부리며 대들기도 했지만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부드럽게 이끌어 주었다고 한다.

손주는 지금 보은을 잊지 않고 할머니를 엄마처럼 모시고 산다. ‘어느 부모보다 더 멋진 부모라고 생각 한다’고 SNS에 글을 남겼다. 현재 청년은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이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 인기가수가 된 소년가수 정동원 군도 부모의 이혼으로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소년은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트롯을 배웠고 성공을 거뒀으며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늘 눈물을 흘리곤 했다.

트롯에 담긴 소년의 비감 속에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슬픔이 배어 있는 것 같다. 소년가수는 할아버지가 생전에 가르쳐 준 색소폰을 곧잘 불어 TV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카타르 월드컵의 영웅으로 떠오른 황소 황희찬 선수는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팔뚝에 새긴 조부모의 이름에 입맞춤을 했다. 옛말에 은혜를 뼈에 새겨 잊지 않겠다는 ‘각골난망’이란 고사를 생각하게 한다.

황 선수는 귀국하자마자 월드컵 경기에서 받은 최우수선수 트로피를 할머니 품에 들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분은 두 분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어린 황희찬을 어머니처럼 보듬어 건강하게 키웠다. 황희찬은 그런 할머니를 가슴에 넣고 뛰었는지 모른다. 한밤 중 골을 넣어 국민들을 열광시킨 그는 할머니를 생각하고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우리 주변에는 부부 맞벌이, 이혼 등으로 어린이들이 친가나 외가에 의탁돼 자라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을 딛고 자란 할머니 세대는 힘들게 살아도 손주들을 버리지 않고 지극한 사랑으로 양육한다. 친부모의 공백을 할머니들이 메워주고 있어 밝게 자라는 어린이들이 많다.

경제난 시대 한국의 불안하기만 한 사회와 가정을 건전하게 지탱하고 있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부부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잦은 질병에도 불구하고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며 어린 손주들을 양육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훈훈한 모습들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청년, 축구 영웅 황희찬은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아직 한국은 희망이 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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