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거부 겹치며 줄도산 공포
985곳 중 577곳 타설 중단
둔촌주공 재건축도 ‘빨간불’
“PF 부실 우려에 충격 커”
‘자본잠식’ 상태 늘어날까
국토부·노조 ‘강대강’ 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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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24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화물차들이 멈춰 서 있다. ⓒ천지일보 2022.11.24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전국 건설현장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앞서 원자잿값 상승과 금리인상으로 인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로 곤혹을 치른 건설업계에 운송거부 사태까지 겹치면서 줄도산 공포감마저 감도는 상황이다.

아울러 ‘귀족 강성 노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시멘트 분야 화물운전사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고, 정유 분야도 검토 중인 가운데 공익을 위해 서로가 양보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국 현장 절반 이상 ‘STOP’

1일 대한건설협회와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전국 985개 공사 현장 중 577곳에서 레미콘 타설 작업이 중단됐다.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로 시멘트 출하가 멈추고 레미콘 공장까지 연쇄적으로 가동 중단되면서 절반이 넘는 현장이 멈춘 것이다.

이는 공급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달 분양에 나서는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 포레온(둔촌 주공 재건축)’의 골조 공사도 멈출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시공사업단인 현대건설 측 관계자는 “현재 골조 공사 중 타설 작업이 중단됐다”며 “파업이 이번주를 지나면 모든 골조공사가 중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6000여 가구를 1만 2000여 가구로 탈바꿈하는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는 매일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600대 분량의 시멘트가 필요하다. 다만 화물연대 파업으로 레미콘 공장까지 멈추면서 공사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콘크리트 타설 공사는 일정량을 한 번에 부어야 하기 때문에 충분한 양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

시멘트 협회 관계자는 “현장에선 매일 18만~20만톤의 시멘트가 필요하지만 파업이 계속되면서 출하량이 10% 이하로 줄었다”며 “파업이 일주일을 넘어선 만큼 대부분 레미콘 공장의 가동이 중단됐고, 공사를 중단하는 현장도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파업으로 이번주에만 전국의 128곳의 현장이 추가로 중단될 전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타설 작업이 건설의 주된 공정인 만큼 준공을 1~2개월 앞둔 현장 외에는 모두 파업의 영향권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테리어, 전기, 미장 등 다양한 공사가 병행되는 아파트공사에서 타설 작업 중단은 공기와 건축비 증가로 이어지는 만큼 늘어나는 이자 부담에 ‘건설사들이 줄도산 할 것’이란 전망도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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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사무실에서 건설업계 관계자와 입주예정자가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고 레미콘 공급 중단에 따른 현장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제공: 국토부) ⓒ천지일보 2022.12.01
 

◆‘PF 100조 시대’ 파업여파 역대급

국토부와 화물연대 간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고금리 상황에서 발생한 파업이라 그 여파가 여느 때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PF 위기로 건설사들의 돈줄이 막힌데 더해 건설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것이란 장담마저 할 수 없는 상황이 겹치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동산 PF 대출 규모가 100조원이 넘는 국내 건설업계에서 공사 중단으로 악재가 겹칠 경우 늘어나는 이자부담을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막막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지난 2012년 말 약 37조원에서 올해 6월 말 기준 약 112조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늘어나는 이자부담도 문제지만 운송거부에 따른 수급 대란으로 자잿값이 상승하는 것도 치명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자잿값이 10% 오를 경우 건설사의 영업이익률은 3%p 가량 줄어든다. 또 자재 확보 여력이 부족한 중소형 건설사들의 경우는 공사 중단으로 이어지는 등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일각에선 일부 건설사들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자본잠식이란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는 것으로 자본잠식 상황이 계속될 경우 도산은 불가피하다. 이미 경남 18위의 중견 건설사 동원건설산업이 부도처리됐고, 롯데건설도 지난달 자금운영을 목적으로 2000억원을 유상증자, 서초구 사옥을 담보로 3000억원을 대출, 계열사로부터 1조 4500억원을 수혈받기도 했다.

◆업무개시명령에도 대치 계속… “산업구조 개편해야”

국토교통부도 이를 타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상황은 ‘강대강’ 대치가 계속되며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달 28일과 30일 두 차례에 걸쳐 화물연대와 교섭을 진행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올해 말 종료를 앞둔 안전운임제 영구 실행과 품목 확대를 두고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29일 공개된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도 “전투적인 노조 문화가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라며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 사태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은 노사관계에서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28일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이번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는) 어려운 국가 경제를 외면한, 극소수 강성 귀족노조 수뇌부가 주도하는 이기적인 집단행위”라며 “국민 경제가 휘청거리고 선량한 근로자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반복되는 악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협상 결렬 이후 파업이 계속되면서 피해는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카드를 꺼내들고 압박에 나선 상황이다.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됨에 따라 화물차 기사는 명령을 송달받은 다음날 자정까지 운송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과 운행정지·면허 자격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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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임제 일몰제를 폐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중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 관계자들이 3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에서 열린 2차 교섭이 결렬되며 자리를 떠나는 구헌상 물류정책관에게 항의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한 취지라며 전날 화물연대 파업에 대응해 시멘트 운수 종사자 2천500여 명의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출처: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화물연대와의 교섭 이후 “이런 식의 대화는 필요 없다. 걸핏하면 산업을 세우는 단체라면 해체하고 새로운 산업구조를 세우는 게 맞다”며 “근본적으로 공급 구조 자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날을 세웠다. 

아울러 “시장의 핵심 요소인 가격을 일방이 입맛대로 고정하고 마음에 안 들면 중지시킨다”며 “이런 식의 시장구조는 어디에도 없다. 사회주의 나라에서도 이렇게 안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침체 분위기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화물연대의 파업이 자칫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출신 윤희숙 전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화물연대의 운송거부는 민주노총 릴레이 파업의 일부로 한국 경제를 불법파업 천국으로 만들려는 정치투쟁”이라고 꼬집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과 원칙에 입각해 대응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현재로서는 국민들에게 피해가 적은 방향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최선의 길”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번 화물연대 파업은 일반적인 노사관계의 관점보다는 ‘독점력을 가진 산업 구성원이 업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보는 부분이 필요하다”며 “스테그플레이션(물가가 오르고 경기는 침체되는 현상) 상황에서 늘어나는 비용 문제 때문에 산업 전반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물류에 타격이 생길 경우 부정적인 영향이 크기 때문에 총파업은 기본적으로 자제하는게 맞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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