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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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미사일 두 발이 폴란드에 떨어져 2명이 사망했다. 언론은 러시아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하며 마침내 러시아가 나토 동맹국을 공격했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정상들은 긴급 회동을 가졌다. 하지만 나토는 “러시아 순항미사일을 막기 위해 발사된 우크라이나 방공미사일로 인한 사고”로 잠정 결론지었다. 폴란드는 폴란드대로 폴란드를 겨냥한 미사일이 아니며 따라서 폴란드에 대한 공격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미사일 파편을 조사한 결과 러시아군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쏜 미사일이라고 계속 우기면서 나토의 정밀 조사에 참여를 요청했으나 나토는 이를 거절했다. 왜 그는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8개월 만에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을 탈환하는 등 전과를 올렸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아직은 전황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그동안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에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퍼부어 전기, 수도, 가스 등 인프라를 파괴함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이번 전쟁 발발 전부터 최근까지 수많은 대러 경제 제재를 발동했으나 서방의 예측과는 달리 러시아는 여러 경제 지표로 볼 때 적어도 아직은 서방의 제재를 잘 견디고 있으며 전쟁 수행 능력에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서방국가들이 자신들의 무기 재고가 떨어질 정도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고는 있으나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몰아낼 것으로 확신하고 있지 못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러미 양국의 대통령 안보보좌관, 그리고 참모총장 사이 물밑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국과 프랑스는 시기와 조건은 우크라이나가 결정할 문제라고 하면서도 러시아와의 협상 필요성을 내비쳤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이용해 러시아를 전쟁의 늪에 빠지게 하는 데 성공했고 국제사회에서 러시아가 따돌림을 받게 하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으나 대리전을 수행하는 데 따른 정치적 경제적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번 전쟁으로 유럽국가들의 경제적 번영이 사실은 그동안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와 원유를 저렴하게 공급한 데 따른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유럽국가들은 말로는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끊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러시아가 인도와 중국에 판매한 원유나 가스를 웃돈을 주고 사들이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이며, 미국에 대해서는 대체재인 미국의 셰일 가스가 러시아산에 비해 3~4배나 비싸다고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 에너지 가격의 급격한 상승 때문에 유럽 기업들 특히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독일 기업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또한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야기된 경제난에 시달리는 유럽 각국에서는 시민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지원을 중지하고 대러 제재를 해제하라고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럽의 정치 엘리트들이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결의를 자주 천명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피로감을 마냥 감출 수는 없어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의 종결이 두려울 것이다. 이른바 서방 언론이 만들어 준 ‘월드 스타’로서의 짜릿함은 한순간에 끝나버릴 것이다. 물론 전쟁이 끝나게 되면 더 이상의 사상자는 나오지 않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전쟁이 끝나든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엄청난 후폭풍일 뿐이다. 우크라이나 야당과 국민들은 침략자 러시아에 대한 증오와 분노와는 별개로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반러시아 강경파에 휘둘린 나머지 회피할 수 있었던 전쟁을 자초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막대한 희생을 치르게 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폴란드에 떨어진 미사일이 러시아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책임은 러시아에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서방이 그동안 실컷 우크라이나를 이용해 놓고 이제 ‘나 몰라라’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지 않을까? 이번 사고가 나토 측 발표대로 ‘러시아 순항미사일을 막기 위해 발사된 우크라이나 방공미사일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 나토의 직접 개입을 유도하려는 이른바 거짓 깃발 작전(false-flag operation)으로서 우크라이나의 ‘고의에 의한 오폭’은 아니었을까?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완전 철수하고 지난 9월 러시아가 자국 영토로 선언한 동남부 지역을 비롯해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까지 돌려줘야 종전 합의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조건은 러시아로서는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가 수용할 수 없는 방안을 고집한다면 그는 과연 전쟁을 끝낼 생각이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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