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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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대대적인 반격과 러시아의 부분 동원령 발동으로 전쟁이 더 길어지고 더 격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9월 하순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러시아와 독일 사이 발트 해저 가스관 노르드스트림-1과 노르드스트림-2에서 잇따라 누출 사고가 있었고 현재 배후를 놓고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두 가스관은 러시아가 과반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각 2개 라인씩 모두 4개 라인으로 돼 있다. 이 중 3개 라인에서 가스 누출을 초래한 파열이 네 군데 발견됐다. 현재까지 예비조사 결과 관련국(독일, 스웨덴, 덴마크)들은 “최근 발견된 파열은 단순한 물리적 사고가 아니라 심각한 고의적 파괴 활동의 결과이다. 누출 직전에 폭발이 있었으며 수백 톤의 폭발물이 사용된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

과연 누가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일까? 서방에서는 지난달 26일 첫 발견 직후 러시아의 소행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천연가스 가격을 크게 올리기 위해 은밀한 작전을 벌였다는 것이다. 특히 4개 라인 중 1개 라인은 아무런 일이 없어 계속해서 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그러한 의심을 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대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사건은 국제적 테러라고 비난했으며 러시아 외교부는 미국 배후설을 제기했다. 현재 덴마크, 스웨덴 및 독일이 합동 조사팀을 구성했는데 러시아는 러시아가 참여하지 않는 ‘사이비 조사 결과’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경고했다. 일반적으로 범죄 행위의 용의자는 그 범죄 행위의 결과 때문에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가 유럽에 대해 에너지를 갖고 장난(?)을 치고 싶으면 얼마든지 가스관을 잠그거나 공급을 줄이면 되는데 굳이 거액을 들여 건설한 가스관을 훼손할 이유가 있을까? 서방의 주장처럼 러시아가 동절기에 가스값을 올리려고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

노르드스트림-2가 지난해 가을 완공되기까지 있었던 잡음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강하게 반대했다. 노르드스트림-2가 개통돼 러시아로부터 곧바로 독일로 가스가 공급되게 되면 자기 나라를 통과하는 기존 러시아 가스관의 이용이 감소하거나 중단돼 통과료 수입이 대폭 줄어드는 것은 물론 러시아로부터 안보 위협이 커질 것을 우려했다. 미국은 가스관 공사에 참여하는 서방 회사들을 마구잡이로 제재하면서 독일 정부에 대해 건설공사를 중단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놓고 러시아 가스 대신에 미국 가스를 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가스관으로 운송되는 러시아산 가스(PNG)에 비해 LNG 형태로 공급할 수밖에 없는 미국산 가스는 가격경쟁력이 없다. 당시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필사적으로 미국의 압력에 맞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독일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마지못해 공사 완공 자체는 용인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 폭스 뉴스의 터커 칼슨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지난 2월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침공하면 노르드스트림-2를 끝장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독일이 통제하고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약속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했다. 또한, 중국의 인터넷 매체들은 어떤 미국 정치인의 “미국이 독일로부터 동의를 받았다”라는 말을 보도했다.

한편 이번 사고가 일어나기 얼마 전 노르웨이로부터 폴란드로 연결되는 가스관이 개통됐고 폴란드 가스회사가 노르웨이 측과 연간 100억 ㎥의 가스를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러시아산 가스의 공급 없이도 가스 허브가 될 수 있게 됐다. 폴란드 정치인들이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식으로 나오자 미국에서는 폴란드가 이번 테러행위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폭발 당시 현장에 폴란드 선박뿐만 아니라 폴란드 그단스크 기지 소속 미군 헬리콥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폴란드와 미국이 공범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이런 정황들만 가지고 미국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된다. 어쨌든 이번 사건으로 미국은 유럽의 가스 시장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동시에 러시아가 전쟁 비용을 조달하는 데에 타격을 주는 이익을 보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이제까지 미국 등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과는 달리 사실상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며 그로 인한 파장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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